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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별을 보며 자란 아이는 다르다

등록일 2022-10-31 17:18 게재일 2022-11-0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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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작가가 만난 ‘이 한 사람’<br/>홍성창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이사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100시간 천문학 특별강연’(2022년 포항제철초등학교).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100시간 천문학 특별강연’(2022년 포항제철초등학교).

올해는 지구와 목성이 70년 만에 가장 가까워진 해다. 다음 기회는 무려 107년을 기다려야한다. 이번 가을이 평생에 단 한번 있는 목성 관측의 최적기라지만 하늘을 올려다봐도 별은 보이지 않고 천문대는 멀기만 하다. 예전에는 별이 이렇게나 드물지는 않았다. 개구리나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시골이 아니더라도 별 헤는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은 추억에서나 존재하는 요즘, 누구에게나 공평했던 별은 이제 찾아보는 자의 몫이다. 여기 친숙한 별자리부터 일식과 월식, 유성 같은 귀한 순간들까지 대중들과 나누는 별지기가 있다. 30여년 간 별 보는 즐거움을 전파하고 있는 홍성창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이사를 만났다.

 

개교 때부터 근무한 포항제철초 우주과학관 덕에 별과 가까워져

동료들과 함께 연 과학캠프서 본 토성의 경이로움 잊을 수 없어

일월신화·암각화에 새겨진 별자리 등 천문스토리 풍부한 포항

가족끼리 별 보고 이야기 들을 수 있는 시민천문대 조성됐으면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는 어떤 곳인가.

△천문학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별 보기 안내자’ 역할을 한다. 전국 15개 지부를 운영하며 일반인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거나 일식, 월식 등 중요한 천체 이벤트가 있으면 보여 주기도 한다.

-천문 관측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개교 때부터 근무한 포항제철초등학교에 별자리를 투영하는 플라네타리움과 천체망원경 등이 구비된 우주과학관이 있어 자연스레 천문학과 가까워졌다. 90년대 중반부터 과학교육에 관심 있는 교사들이 ‘미래마당’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해마다 과학캠프를 열었다. 당시로는 획기적으로 서울에 있는 천문학자를 초청해 영천의 한 캠핑장에서 관측을 했는데 그때 처음 본 토성의 경이로움이 지금까지 밤하늘을 보게 만들었다.

-밤하늘의 별이 다 같은 별은 아니라고.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태양이다. 태양의 둘레를 도는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은 움직이는 떠돌이별 즉 행성이다.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은 아니지만 태양 빛이 반사되어 별처럼 보인다. 문학에서는 별에서 살 수 있지만 과학적으로는 살 수 없다. 그나마 지구는 태양이라는 난로가 있어 생명체가 살 수 있다. 생명체가 있을만한 곳을 찾으려면 별이 아니라 별 둘레를 돌고 있는 행성이나, 행성 주위를 돌고 있는 위성에서 찾아야 한다.

 

홍성창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이사
홍성창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이사

-기억에 남는 관측이 있다면.

△밤하늘의 천체는 망원경으로 봐도 대부분 흐릿하다. 장시간 빛을 담은 천체사진이 훨씬 나을 때도 많다. 그래도 토성의 고리, 목성의 띠와 4대 위성, 달 표면의 구덩이, 색깔 다른 쌍성인 알비레오(백조자리), 별 무리들인 성단 등은 선명하게 확인되어 보는 재미가 있다. 미국에 개기일식 관측 원정대로 참가한 것과, 몽골의 칠흑 같은 밤도 기억에 남는다. 몽골의 투명한 밤하늘이 얼마나 부럽던지 남북한의 상황이 나아져서 북한에 별을 보러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8월 ‘모두를 위한 천문학’을 주제로 세계최대규모의 국제 천문 학술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세계가 천문학의 대중화에 노력하고 있지만, 지역에서는 천체 관측을 누릴 기회가 부족하다.

△가족끼리 저녁 먹고 들러서 별을 보고, 별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민천문대가 들어서면 좋겠다. 형산강변이나 철길숲 산책로도 좋다. 포항은 일월신화가 전해오고, 곳곳에 산재한 고인돌이나 암각화에 선사시대 사람들이 눈으로 본 북두칠성이나 남두육성 같은 별자리가 새겨져있어 천문 스토리가 풍부하다. 게다가 전문 인력도 충분하다.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회원들도 있고 천문학에 관심 있는 교사들의 모임인 경북천문교육연구회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역량이 출중하다. 현재 각 학교 단위로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고 특별한 천문현상이 있으면 시민들을 위한 공개 관측회도 하는데 잘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 이와 함께 강변이나 산책로에 천체망원경을 설치해 별을 보는 ‘찾아가는 천문 관측 프로그램’이나 시민을 위한 천문학 강좌를 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홍성창 이사가 제안하는 천문학의 대중화 방안은 시민천문대이다. 천문학자들이 연구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천문대와 달리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곳으로, 지방자치단체가 건립한 천문대를 말한다. 2001년 대전을 시작으로 부산과 서울, 순천만, 영양, 청주, 충주, 남원 등 전국 30여 곳에 시민천문대가 있다. 일월신화를 간직하고, 용광로의 불빛으로 성장했으며 국제불빛축제가 펼쳐지는 포항에 천문대가 생긴다면 그것만큼 의미 있는 장소가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홍성창 이사. 그는 시민들의 발길이 닿는 가까운 곳에서 누구나 별을 볼 수 있는 천문 도시를 꿈꾼다.

-천문대가 도심에 있으면 별이 보이지 않을 텐데.

△시민들에게 가까이 가려면 최고의 하늘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천문 관측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상이 달과 토성인데 가로등이 밝아도 달은 보인다. 달의 분화구를 보는 것만으로 상상하는 천체의 모습이 실제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1년에 3분의 1 정도는 토성과 목성도 관측할 수 있다.

-어르신들을 위한 강좌도 진행한다고.

△천문학은 나와 다른 별개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실생활과 밀착된 학문이다. 천문학은 원래 날짜와 방향을 알기 위해 시작됐다. 캄캄한 밤하늘에서도 북극성을 보고 방향을 찾을 수 있다. 달력의 기원이나 별자리와 관련한 정보를 알려드리면 어르신들이 굉장히 좋아하신다. 경북 봉화와 영양에서 천문지도사 교육을 받은 주민들은 마당에 천체망원경을 설치해 차별화된 한옥스테이를 운영하는 등 밤하늘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특히나 별자리는 아는 만큼 보인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볼 수 있는 별자리는.

△우리나라의 가을밤은 화려하지 못하다. 밝은 1등성이 다른 계절에 비해 적기 때문이다. 보통 한 계절에 세 계절의 별을 볼 수 있다. 초저녁에는 지난 계절의 별, 한밤중에는 그 계절 별, 그리고 자정 넘어 새벽에는 다음 계절의 별이 보인다. 11월 초저녁에 볼 수 있는 1등성은 거문고자리의 베가(직녀성)와 백조자리의 데네브,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견우성) 같은 여름별이다. 가을철 별로 분류되는 유일한 1등성은 남쪽물고기자리의 포말하우트로, 주변에 밝은 별이 없어 ‘고독한 별(The Solitary One)’로 불린다. 자정이 지나면 겨울철의 대표 별자리인 오리온자리를 볼 수 있다.

-포항에서 별 보기 좋은 곳을 추천한다면.

△별을 보려면 인공불빛이 없고 탁 트여야 한다. 경북 영양과 청송, 봉화 같은 곳이 그나마 은하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포항에는 신광 들판과 기북, 죽장면이 비교적 잘 보이지만 빛공해가 점점 심각해진다. 인공조명은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생태계를 위협하며 밤하늘의 별빛을 뺏어간다. 빛공해를 개선하기 위해 가로등에 갓을 씌우는 일이 시급하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된 경북 영양 수비면에서도 이런 노력들을 하고 있다.

-11월에 특별한 천문현상을 만날 수 있다고.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월식이 오는 8일에 일어난다. 개기월식은 ‘태양-지구-달’이 일직선에 놓이면서 지구의 그림자에 달이 숨어들면서 발생한다. 지구의 그림자에 달의 일부가 들어가는 부분월식은 저녁 6시 10분부터 시작된다. 달의 전부가 지구의 그림자에 들어가는 개기월식은 7시 18분부터 8시 43분까지 관측할 수 있다. 검붉은 보름달인 ‘블러드 문(Blood Moon)’도 나타난다. 8일 오후 6시, 개기월식 공개 관측회를 포항제철초등학교에서 진행한다.

-천문 관측에 관심이 생겼다면 망원경부터 사야할까.

△천체 관측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고가의 망원경부터 덜컥 구매하는 것이다. 일단은 눈으로 시작해보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쌍안경도 별 보기에 괜찮은 장비이다. 천체망원경은 상하좌우가 바뀌어 보이지만 쌍안경은 상이 바로 보이고, 무엇보다 휴대가 간편하다. 다만 쌍안경도 배율과 구경이 크면 무겁고 상이 흔들려서 삼각대가 필요하다. 맨눈으로 시작해 쌍안경, 망원경으로 이어지길 추천한다. 큰 돈 들여서 장비부터 갖추는 애호가들도 있지만 작은 망원경 하나로도 평생 하늘의 별을 다 보지 못한다.

-천문학의 발전은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더 큰 우주로 나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30년 가까이 별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를 느꼈는지. 별을 보는 경험이 주는 삶의 지혜가 있다면.

△지리산에서 억누르듯 쏟아지는 별빛을 경험하며 우주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됐다. 우주는 생각 이상으로 멀고 광활하며 무엇보다 아름답다. 눈으로 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도 알려줬다. 개인적으로 교육활동에 보람이 크다. 아이들과 별을 보기 시작해서 그런지 지금도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별을 보길 좋아한다. 특히 아이들이 별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 별을 서너 개 본 아이와 쏟아지는 별을 본 아이는 다르게 성장한다. 쏟아지는 별을 경험한 아이들은 천문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각자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은 늘 가지고 있다. 문학을 하든, 음악이나 미술을 하든, 다를 것이라 믿는다.

 

홍성창 이사는

대구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청도의 공립 초등학교에서 근무했다. 1987년 개교한 포항제철초등학교로 옮기면서 천문학과 가까워졌다. 경주문화재야행 천체 관측 강사, 세계천문의 해 기념 ‘100시간 천문학’ 거리의 별 축제(2009)와 ‘별나라 우리나라’ 캠페인 집행위원(2010) 등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경북천문교육연구회 회원이자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이사이다. 천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활동으로 금성 태양면 통과 공개 관측회(2012), 네오와이즈 혜성 관측회(2020, 경북 봉화) 등을 진행했고, 개기월식이나 일식이 있을 때마다 공개 관측회를 열고 있다.

 

배은정

1974년 대구 출생. 경북대학교 사학과 졸업. TBC·포항MBC·경북교통방송 작가. ‘포항문화의 상징과 공간’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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