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서양화가 변동렬<br/>9일까지 장생포 문화창고 초대전… “정체성 찾고파 다시 그림 시작”<br/>“나의 마지막 작품은 문자를 해체하는 것… 내 흥을 그대로 담을 터”
“그동안 우리는 서양 쪽 현상에 너무 천착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고자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미학을 찾고 싶어요.”
경주에서 활동하는 서양화가 변동렬(58) 작가는 자신의 작가 인생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도식화, 정형화된 방식의 묘사에서 벗어나 작가 내면적으로 천착된 개인 무의식의 형상과 어우러지는 여백의 ‘즉흥’, ‘막그림’ 이라는 작가만의 조형성을 동시에 표현하면서 화폭에 자기만의 의경(意境)을 찾는다.
지난달 21일부터 오는 9일까지 개최하고 있는 울산 장생포 문화창고 초대전은 그의 작가정신이 집약된 전시회로 평가되고 있다. 변 작가를 지난 3일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백남준 비디오아트 큐레이터, 4D영상 ‘천마의 꿈’ 프로듀서, 미디어 파사드 ‘경주 타워’ 총감독, 솔거미술관 운영실장 등을 역임한 문화기획자다. 이런 화려한 이력을 가진 문화기획자로서 일을 그만두고 다시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솔거미술관 운영실장을 역임하면서 그림을 해야겠다는 본격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23년 전에는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작가였다. 본격적인 그림을 그리려고 하니까 시대 흐름과 트렌드를 알기 위해 리서치를 하게 되었고, 1년간 부산아트페어를 시작으로 키아프, 프리즈 아트페어를 돌아다니면서 나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
-2019년 달 그림으로 ‘월도천휴여본질(月到千虧餘本質)’전을 했었는데 작가에게 달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엑스포에서 2015년 실크로드 사진전을 기획하면서 우리 역사의 한계를 발견하고, 유목 민족들의 국기를 통해 그 속에 모두 달이 있음을 발견했다.
달은 시간과 어떤 상호 간의 그리움, 동양적인 정서를 품는 메타포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월도천휴여본질’은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빛을 발하는 달의 본질은 변함이 없는 것처럼 이때도 나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실경의 달을 그렸었다.
-2022년의 그림은 달에서 변화되어 분청, 막사발이 나타나고 배경은 자유로운 여백을 보이는데 이런 변화는 무엇인가?
△실경의 달을 그리다가 답답함을 느꼈다.
자유로움을 찾고자 동양화에 관심이 갔고 다시 현대미술로 리서치한 것을 유추해보니 한국의 김환기 작가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가장 동양적인 그림을 그렸고, 이우환을 이어 현대에서는 이강소 작가의 그림에 매료되었다. 내 그림의 여백 표현 방법은 이강소 그림을 연구하게 되면서 발견하게 된 것이다. 특히 세계적인 도예가로 윤광조 선생의 도자기 작품과 아카이브를 수많은 시간을 모니터링했다.
-지금 울산에서 초대전을 연 작품들은 여기서 찾아낸 달과 여백 전인가.
△지금은 변화되어가는 과정이다. 조선시대 진경은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였다면, 나의 작품 속 의경은 그야말로 자유스러운 나만의 형태인데 사군자를 표현하면서 의인화시켰다. 서양화와 동양화의 큰 차이점, 즉 정신적인 큰 차이점은 여백이다. 거기에 매료되면서 ‘검을 현(玄)’도 알게 되었고. 검은빛, ‘밝고 깨끗하다’를 표현하고 싶었다.
-계속 강조하는 ‘의경’이란 변 작가의 그림에서 무엇인가?
△의경은 사물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고 깊이 성찰함으로써 자신의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것에 큰 의미를 갖는다. 변동렬의 방식으로 의경을 그림으로 풀어갈 것이다. 분청토는 흙이라는 한계성이 있다. 재료를 연구하다 보니 석채가 내구성이 뛰어나다. 원시미술의 암각화는 돌이다. 철보다 더 뛰어나다. 검은색을 만드는 현(玄)의 색깔을 위해 자연에서 재료를 찾고자 한다. 현대미술 최고의 재료는 자연의 재료다. 석채가 주는 마감성은 굉장하다.
-변 작가의 그림에서 즉흥성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동양에만 즉흥이 있다. 막걸리, 막사발, 여기에서 막이란 뜻이 즉흥적인 것이다. 현재 ‘현(玄)’, ‘막’이 가슴에 꽂혀 있다. 그림이란 내가 행복해야 하는 것이다. 현대미술에서 점도 그림이 되고 선도 그림이 되더라. 조형성, 재료, 마감 이게 끝이다. 정신적인 의미가 중요하지, 형태적인 의미는 없다. 이강소도 잭슨 폴록 초기 그림과 같다. 그것을 넘어서 변주곡을 만드는 것이다. 의경 속 즉흥성으로 나의 정체성을 찾고, 내 가치관, 세계관을 펼치는 것이다. 흥은 자연에서 온다. 나만의 점을 찍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 그릴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고 무엇을 그릴 것인가, 그림의 자아를 찾는 게 중요하다. 자기만의 자아. 이게 내 그림 속 흥이다.
-그림에서 사군자, 문인화를 손가락으로 그렸는데. 왜 그렇게 표현하였나?
△막사발에 그려진 봉황을 보고 깜짝 놀라서 그렸다. 피카소의 진경과 똑같다더라. (막사발 속에 봉황을 그린) 사람들의 흥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 속 막사발을 그리고 ‘바람같이’를 함축적으로 썼다. 이처럼 막사발은 즉흥적이다. 여기서 발견한 것은 나는 본질, 정신적인 본질, 의경을 찾아가고 싶었다. 그게 더 궁금하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지금 울산 전시회 그림에서 차후 어떻게 변화를 줄 것인가?
△나의 마지막 작품은 문자를 해체하는 것이다. 즉흥, 흥 여백의 의미를 살린 즉흥, 막그림 등…. 이런 식으로 내 흥을 그대로 담을 것이다. 첫 번째는 실경과 진경의 달 그림이었다면, 두 번째는 달과 여백의 시리즈, 그다음은 문자의 해체다. 문자는 권력을 만든다. 문자도 조형의 일부다. 문자를 해체해 버리고 싶다. 문자의 조형을 인용하면서 다음 작품은 이렇게 해체하는 작품을 하고 싶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