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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악회 독도표석 태풍에 유실…제11호 태풍 힌남노 내습 시

김두한 기자
등록일 2022-09-19 13:50 게재일 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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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악회가 사회단체로 유일하게 울릉독도 동도 몽돌해변 입구에 설치한 '독도표석'이 지난 6일 독도를 내습한 제11호 태풍 ‘힌남노’에 의해 유실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울릉군독도관리사무소 직원이 제11호 태풍 힌남노를 피해 울릉도에 왔다가 다시 들어가 살피던 중 이 '독도표석'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이 독도표석은 상징성이 크다.

이 표석은 정부지원으로 민간단체가 설치한 최초 영토표석이기 때문이다. 규모는 가로 60cm 세로 46cm 규모로 지난 2015년 8월7일 설치됐고 앞면에 독도 獨島 DOKDO KOREA 적혀 있는 '독도 표석'이다.

뒷면에는 한국산악회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단 KOREAN ALPINE CUUB 1952년 8월 15일이라고 적혀 있다. 이 같은 이유는 한국산악회 '독도표석'은 애초 지난 1953년 10월14일 설치됐다.

지난 2015년 새로 설치됐다. 1953년 설치된 '독도표석'은 동도몽동해변의 독도조난어민위령 비 옆에 설치됐고 표석 전면에는 ‘독도 獨島 LIANCOURT’라고 표기했다.

울릉군독도박물관 등에 따르면 당시 국제해도에 LI-ANCOURT라고 표기된 섬이 독도라는 것을 밝히고자 한글과 한문 영문으로 독도를 표기했다는 것이다.

이 표석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산악회는 지난 1940년 결성된 백령회를 그 전신으로 하고 있다. 백령회는 1931년 일본인들이 조선산악회를 조직하자 이에 자극받은 한국 산악인들에 의해 결성된 등산 동호회다.

한국산악회의 창립목적은 ‘국토구명사업과 학술조사’다 이들은 울릉도·독도를 지난 1947년 8월16일~28일까지 13일간, 2차 조사는 1952년 9월17~28일까지 12일간, 3차 1953년 10월11일~17일까지 7일간 3차례 조사했다.

제1차 조사는 해방 후 일본의 불법 독도침탈과 영유권 주장이 계속됨에 따라 이를 내버려둘 경우 앞으로 외교적인 문제로 심화할 수 있다고 판단 시행한 조사다.

당시 과도정부는 안재홍 민정장관을 위원장으로 ‘독도에 관한 수색위원회’를 조직 정부 공무원과 각계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을 파견 독도를 조사했다.

제1차 조사를 통해 독도의 동식물 표본이 채집됐고 독도의 측량 및 사진 촬영이 이뤄졌다. 이와 함께 독도에 '조선 울릉도 남면 독도'라는 푯말을 설치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밝히고자 했다.

제2차 조사는 일본의 지속적인 독도침탈에 대응하기 위해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고 기초자료를 축적하고자 조사대상범위를 확대했다.

당시 한국 산악회 홍종인 부회장을 단장으로 12개 반 38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은 독도에 상륙을 시도했지만 1948년 미 공군 독도폭격과 풍랑으로 독도에 상륙하지 못하고 사진촬영만 했다.

제3차 조사에서 일본이 독도 동도와 서도에 “島根縣 隱地郡 五箇村 竹島”(도근현 은지군 오개촌 죽도)라는 표목을 설치한 것으로 제거하고 화강암으로 이 독도표석을 설치, 의미가 크다.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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