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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석굴 사원에서 최고의 예술적 성취를 느끼다

등록일 2022-08-28 18:18 게재일 2022-08-2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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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함산에 깃든 신라 역사와 경주 이야기<br/>(10)  신이 빚은 솜씨 ⑶ 석불사의 놀라운 석상들
석불사 전실의 팔부신장 중 아수라상. 왼쪽은 현재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일제강점기때 1차 수리를 거친 뒤의 모습이다. /문화재청 제공

□ 감실 안의 석상 엄격한 좌우대칭의 형식

석불사는 돌로 만든 작은 석굴 사원이다. 인도의 아잔타나 중국의 둔황 석굴 사원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지만 조형미나 예술적 성취에 있어서는 가히 최고 수준의 성취를 보인다.

석불사를 보수하면서 습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석불의 훼손을 우려해 석불 입구를 아예 유리로 막아버렸다. 석불사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본존불과 사천왕상 등의 일부 조각상에 불과하다. 실제로 석실 내부는 시각적인 제약으로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게다가 사진까지 찍을 수 없어서 석불사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없는 것은 안타까울 뿐이다.

 

 

둥근천정 360개 넓적한 돌로 축조된 석불사… 석불 훼손 우려 유리로 막아 본존불 등 일부 관람만 가능

석불의 가늘고 긴 눈·온화한 눈썹·길게 늘어진 귀 등 얼굴에는 숭고하고 자비로운 마음 전해지는 듯해

석실 내부에 조각된 총 8구의 팔부신장, 아수라·용신·가루라 등 인도 신화속에 나오는 존재들이다

본존불. /고(故) 한석홍기증사진자료
본존불. /고(故) 한석홍기증사진자료

석불의 구조는 사각형의 앞방을 지나면 뒷방으로 이어지는 이중구조다. 통로에는 동서남북을 지키는 사천왕이 자리고 잡고 원형의 뒷방으로 들어가면 방 벽면에 여러 불상들이 좌우 대칭으로 새겨져 있다. 둥근 천정은 360개의 넓적한 돌로 교묘하게 축조되어 있다.

석굴 내부에는 다양한 조상(彫像 조각상)들이 있다. 먼저 석굴의 둥근 주실은 석불 조성의 뜻이 총집중되어 있는 공간이다. 석불사에는 본존인 여래좌상1구를 중심으로 팔부신중상(8구) 인왕상(2구) 사천왕상(4구) 천부상(2구) 보상상(3구) 나한상(10구) 감실좌상 등이 있다.

이 많은 상들은 엄격한 좌우대칭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석굴을 반으로 접으면 완벽하게 겹치게 했다. 이와 같은 좌우 대칭은 고대 조형미술에서 지켜온 하나의 기본원칙이다.

전문가들은 석불사의 변화무쌍하면서도 안정감있고 통일성을 보이는 사찰의 모습은 유례가 없다고 했다.

우선 석불사 본존불부터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본존 부처님은 높이 총 326㎝ 대좌 높이 160㎝ 기단 상대석 폭은 272㎝의 거대한 불상이다.

본존불은 세계문화유산가운데 종교성과 예술성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단단한 화강암으로 조각했지만 모난 곳 없이 부드럽게 빚어낸 솜씨는 가히 명불허전이다.

우선 석불사 석불은 나선형의 나발과 삼도를 하고 있다. 나발(螺髮)이란 소라 나(螺)와 머리털 발(髮)이다. 원래 인도문화권의 남자들은 머리카락을 위로 거둬 모아 상투를 틀고, 그것을 그루터기로 삼아 터번을 둘렀다. 더위나 모래바람으로부터 머리카락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나발은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아 올려진 머리카락 모양을 말하며, 육계는 그런 나발들을 정수리에서 묶어 세운 상투를 의미한다.

석불의 목 주위에는 3개의 주름이 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삼도(三道)라 한다. 이는 탐욕과 노여움, 어리석음을 뜻하는 탐진치(貪瞋癡)나 삼독(三毒) 또는 중생들이 살아가다 죽고 이후 윤회(다시 태어남)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세 가지 단계인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삼계(三界)를 뜻한다고도 한다.

석불의 눈은 가늘고 길다 눈썹은 온화하고 귀는 길게 늘어져 있다. 석불의 인자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숭고하고 자비로운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십일면관음보살상의 얼굴. /고(故) 한석홍기증사진자료
십일면관음보살상의 얼굴. /고(故) 한석홍기증사진자료

□ “시선의 원근을 고려해서 정밀하게 조각”

석불의 머리는 마치 소라같은 그루터기가 가득 붙어있다. 원래 인도문화권의 남자들은 머리카락을 위로 거둬 모아 상투를 틀고, 그것을 그루터기로 삼아 터번을 둘렀다. 더위나 모래바람으로부터 머리카락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인도는 계급사회, 자연히 신분의 차이를 나타내려고 높은 신분일수록 상투와 터번에 많은 금은보배를 장식했고, 이러다 보니 상투가 더 높아졌다. 초기 불상조각가들은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머리카락을 정수리 부근에서 묶어 상투를(후일 육계란 명칭으로 불림) 만든 형태의 불상을 조성했다. 처음에는 상투 끈으로 머리카락을 묶었으나, 불상 양식이 점차 정교해지면서 끈은 사라지고 상투만 표현됐다.

머리에서 위에서 비치는 두광(頭光)에서는 진리의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두광은 본존상과 분리되어 본당의 벽에 새겨졌는데 자세히 보면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이다. 좌우는 224.2㎝임에 반하여 상하는 228.2㎝로 아래위가 긴 타원형이다. 실제는 타원이지만 참배객의 자리에서 보면 원형으로 보인다.

일제시대 활동했던 천재 미술사가 이여성은 ‘석굴암 조각과 사실주의’라는 책에서 두광의 모습이 얼마나 절묘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서술하고 있다. “두광의 연판은 상부와 하부의 소밀(疏密 성김과 빽빽함)의 도가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바 이것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선의 원근을 고려하여 먼 것은 세밀히 새기고 가까운 것은 드물게 새긴 것이다. 이것은 회화의 원소근대(遠小近代)의 원근법을 반대로 처리함으로써 시각상 착각을 피하고저 한 것인 만큼 그 용의가 얼마나 주도하였나(용의주도하였나) 하는 것을 능히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석불의 가사(부처님의 옷)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불상이나 승려가 가사를 입은 모습에는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싸는 통견(通肩)과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우견편단이 있다.

어깨는 둥글고 가슴은 알맞게 넓고 살결이 고와 부드러우면서도 당당하다. 허리는 잘록하여 늘씬한 세련미를 더하고 가부좌를 튼 다리는 안정감 있게 바탕을 이룬다. 곧추 세운 등은 기품 있는 자세를 형성하고 매초롬한 피부는 부드러운 건강미를 형성한다.

불상의 왼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얹었고 오른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항마촉지인이란 좌선할 때 오른손을 풀어서 오른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을 말한다.

궁륭천장과 연화천개석. /고(故) 한석홍기증사진자료
궁륭천장과 연화천개석. /고(故) 한석홍기증사진자료

이는 석가모니가 수행을 방해하는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올바른 깨달음(正覺)을 얻었고 땅의 신(地神)이 이를 증명하였음을 상징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석불상에 매혹되었지만 그중에서도 민예연구가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1889∼1961)의 글은 가히 압권이다.

“누가 능히 이 조각에 나타난 그 뜻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이 불상이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아무런 착잡한 수법도 보지 못한다. …모든 의미는 그 단정한 용모에 모여 있다. 그는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입은 다물고 눈은 쉬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는 어둡고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석굴안에 앉아서 깊은 좌선에 몰두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말하는 침묵의 순간이다… 모든 것을 포함한 무의 경지이다. 어떠한 참된 것도 어떠한 아름다움도 이순간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일제의 한국강점기에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난하고 조선의 문화유산을 사랑한 대표적인 일본 미학자답게 석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남김없이 쏟아놓고 있다.

그렇다면 본존불은 어떤 부처님일까? 석가모니불인지 아미타여래인지 혹은 비로자나불인지 아직까지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모습에 비추어 석가여래가 아니냐는 설이 있지만 황수영 박사같은 이는 아미타여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병향로를 들고 있는 승려상, 제1상. /고(故) 한석홍기증사진자료
병향로를 들고 있는 승려상, 제1상. /고(故) 한석홍기증사진자료

□ 부처님 제자와 불법신 등 다양한 석상

석굴 내부에 안치되어 있는 불상입상도 석불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석실 내부에 모두 8구가 조각되어 있는 팔부신장(八部神將)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을 말한다. 원래는 8구가 모두 온전했는데 동쪽 끝의 2구가 석벽이 무너져 파손되고 매몰되었다. 이후 일제 초기에 복원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팔부신장은 각각 아수라(1상)를 중심으로 용신(4상), 금시조라고도 불리는 가루라(5상) 같은 인도 신화 속에 나오는 존재들이다.

주실 입구에는 금강역사 입상이 양측에 1구씩 배치되어 있다. 2구 모두 한쪽 팔을 들어 주먹을 쥐었고 다른 손은 내리고 있다. 마치 무예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따서 만든 듯한 모습이다. 석굴에 이르는 짧은 통로 남북 양벽에는 대부분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사천왕상 4구가 조각되어 있다. 천왕은 무복을 입고 3개의 상은 모두 긴 칼을 잡았는데 그중 북쪽의 상만은 보탑(寶塔)을 들고 있다. 굴 안에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2개의 천부상이 있다. 첫 번째 안치된 상은 민간 신앙에서 가옥 안에 있다고 믿는 제석(帝釋)이며 그 반대쪽(남쪽)은 범천(梵天)이다. 범천은 인도 고대 신화에 나오는 만유의 근원인 브라마를 신격화한 우주의 창조신으로서 비슈누, 시바와 함께 3대 신으로 불리며 이후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천부상 옆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도래하고 있다. 이들 2구의 보살은 석굴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석굴 뒷벽 중앙에는 십일면관음상이 있다. 이름 그대로 머리가 십이면으로 되어 있는데 중생들의 성품에 따라 얼굴 모습을 달리하여 적극적으로 교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십일면관음상 좌우로 5구씩 부처님의 십대 제자가 배치되어있다. 십대 제자의 모습은 인도 사람의 특징이 그대로 보인다. 높은 코와 깊은 눈이 인상적이다.

제자들은 사리불, 목건련, 마하가섭, 수보리, 부루나, 마하가전연, 아나률, 우파리, 라후라, 아난타 등 불교인들이라면 능히 알만한 인물들이다. 이들 석상은 모두 머리를 깎고 발목까지 걸쳐진 가사를 입었으며 두 어깨를 걸치거나(통견), 오른쪽 어깨를 나타내고 있다.(우견편단) 가장 인상적인 것은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이다. 어떤 이는 향로를 또 어떤 이는 승려들이 공양(식사)할 때 사용하는 식기인 발우(鉢盂), 또 어떤 이는 목이 긴 형태의 물병인 정병(淨甁)을 들고 있다.

미술사학자 고유섭은 “우리는 무엇보다도 잊어서 안될 작품으로 경주의 불상을 갖고 있다. 영국인은 인도를 잃어버릴지언정 셰익스피어를 버리지 못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귀중한 보물은 이 석굴암의 불상이다”라고 말했다. 유리속의 본존불 앞에 서서 차가운 돌에 생명을 불어넣은 신라인들을 생각했다. 높고 낮음 없는 부처님의 세상을 꿈꾸었던 이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이 신비로운 석불로 환생한 것은 아닐까? /최병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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