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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구원을 찾아서!

등록일 2022-07-10 18:01 게재일 2022-07-1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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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황금 세기라 부른다. 다른 유럽 국가들의 문학과 비교할 때 상당히 늦게 출발했지만, 러시아 문학이 세계문학을 선도하는 위치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푸쉬킨에서 시작하여 레르몬토프, 고골을 거쳐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지나 체호프에 이르는 19세기 러시아 문학 거장들의 운항은 경이롭다.

그중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죄와 벌’(1866)은 한국 독자에게도 퍽 친숙하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그녀의 돈을 사회의 유용한 곳에 쓰겠다는 생각을 구체화한다. 자신의 거처에서 전당포에 이르는 거리는 물론 살해수법과 소요 시간까지 주도면밀하게 계산한 그는 완전범죄를 실행한다. 바로 그때 노파의 누이동생 리자베타가 살인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예정에 없던 살인을 해야 하는 라스콜리니코프. 하지만 그가 들고나온 돈은 그야말로 푼돈이었다.

그가 왜 노파를 살해하려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 밝혀진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눈다. 번식만을 위해 살아가는 벌레만도 못한 인간들과 나폴레옹처럼 진정한 인간, 비범한 인간 혹은 강자(强者)의 이분법으로 인간을 나눈다. 그가 보기에 전당포 노파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이(蝨)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 인간을 죽이고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면 자신도 강자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자신의 강고한 내면세계를 확신했던 그가 마주하게 된 현실은 정반대였다. 그의 깊은 잠재의식 안에 자리하던 죄의식이 ‘섬망(<8B6B>妄)’의 형식으로 그를 찾아온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가족의 생계를 매춘으로 짊어진 여인 소냐를 만나게 된다. 의식적-정신적 세계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살인한 라스콜리니코프는 존재론적이고 사회적인 의미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소냐에 강력하게 이끌린다.

왜 사람을 죽였느냐는 그녀의 물음에 라스콜리니코프는 “나는 그저 시험해보고 싶었어. 그게 다야.”하고 대답한다. 수많은 사람처럼 자신이 이가 아니라, 진정한 강자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살인했다는 것이다. 자수하라는 소냐의 충고를 따르는 라스콜리니코프. 시베리아 유배지까지 그를 따라와 뒷바라지하는 여인 소냐. 자신의 온몸을 던져 가족을 먹여살리면서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던 소냐.

소냐를 보면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조금씩 깨달아간다. 그 자신도 전당포 노파도 세상 누구도 이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런 자명한 사실을 수긍하도록 인도한 것은 소냐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

세상은 증오나 살인, 폭력으로 나아지거나 개선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강자의 철학과 실천으로 세상은 단 한 치도 바뀌지 않는다. 세상에 필요한 유일한 덕목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연대하면서 인간적인 유대를 확장하는 일이다.

날이면 날마다 언론을 도배하는 숱한 물리적 폭력과 가공할 폭언과 폭력의 결과를 보노라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유일한 구원의 길, 사랑으로 걸음을 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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