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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 소천하다

등록일 2022-05-17 17:47 게재일 2022-05-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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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태수필가
조현태수필가

오늘은 재미난 이웃 친구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친구가 정년퇴직을 하여 이태 전부터 놀고 있다. 아직 농사철은 이르고 하여 시간 보내기가 어중간한 모양이다. 수시로 집에 찾아오는데 마땅히 대접할 음식이 없으니 쉬운 대로 봉지커피를 마시고는 했다. 그런데 오늘은 봉지커피 백 개 들이 한 통을 사들고 왔다. 자꾸 얻어 마시기가 미안했나보다. 내 입장에서는 자주 찾아오는 친구가 반가울 뿐인데 왜 미안해하는지 모르겠다. 이미 가져온 커피니 두루 나눠 마시겠지만 사람 귀한 농촌에 자주 보는 것만도 고마우니 이러지 말자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커피 물을 끓였다.

하던 일이란 어제 뜯어온 산나물을 손질하는 일이었다. 퇴직 친구(이하 퇴직)가 산나물은 어디서 났느냐고 묻기에 택시 친구(이하 택시)랑 죽장 가서 뜯어왔노라고 했다. 택시의 비번 날이라 소풍 겸 산속을 두루 다녔다고 설명했다. 옛날부터 퇴직과 택시가 유난히 친하게 지내는 사이었다. 그런데 퇴직에게는 언급도 하지 않고 나를 불러 같이 다녀왔으니 심통이 났나 보았다. 입술을 약간 실룩거리더니 택시에게 전화를 했다. 다짜고짜 퉁명스러운 말투로 나무라기 시작했다.

“현태 집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돈만 벌고 다니면 되겠나? 에라 이 인정도 의리도 없는 놈아” 괴상한 소리에 황당해진 택시가 반문했다. 어제 종일 같이 있어도 아무런 낌새조차 없었는데 무슨 희한한 소리냐고 하자 퇴직이 다시 다그쳤다.

“내가 지금 기계에 와 있는데 현태 집에 문상 가야 하니 나 좀 태워다 주라” 그 시각이 점심때쯤 됐다. 안강에서 기계로 가려면 우리 집 주변을 지나게 되므로 택시가 우리 집에 먼저 왔다. 어제까지 멀쩡했는데 무슨 변고냐 싶어 상황파악 차 온 모양이었다. 그러나 퇴직은 나와 방에 앉아 한가롭게 커피나 마시고 있으니 그제야 속은 줄 알고 웃으며 삿대질을 했다. 의리고 인정이고 간에 커피 마시며 노닥거리는 문상도 있느냐고 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퇴직이 기다렸다는듯 표정을 굳히며 일갈했다. ‘포도나무가 소천 했으니 문상해야지’

실상은 문상에 관한 화두가 따로 있었다. 우리 집 마당 가장자리로 나무를 심었었다. 감나무, 대추나무, 엄나무, 포도나무 등등. 그런데 포도나무 두 그루 중에 한 그루가 죽었다. 작년에도 포도를 많이 따 먹었는데 올 봄에 싹을 내지 못하고 말라버렸다.

그러니까 퇴직이 택시를 불러서 점심이라도 같이 먹고 싶은데 마땅한 구실이 없나 생각하다가 문상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포도나무 문상으로 치면 내가 상주 격이다. 그러니 두 친구와의 점심값은 상주인 내가 지불해야지 했다. 거기다가 퇴직은 스스로 점심을 사고 싶어서 일부러 일을 꾸몄다. 또한 택시는 아직 돈벌이를 하고 있으니 점심을 사야 한다고 서로 우겼다

서로 보고 싶고,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이 지내고 싶은 애틋한 인간관계.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런 관계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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