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가 만났다<br/>박진순 경북 참외명장 1호
서울 시내 백화점에서도, 남해의 섬에서 강원도 산골까지 전국 과일전의 참외는 성주참외가 평정했다. 과일 생산지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참외만큼은 경북 성주가 전국을 석권하고 있다. 4천300여 농가에서 올해 수익 6천억원을 목표로 하는 성주참외는 이제 국민과일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듯하다.
재배기술은 연작 피해를 극복하고, 생산시기가 여름이라는 계절적 한계를 뛰어넘어 달싹하고 아삭한 식감의 싱싱한 참외를 전 국민이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농민들의 노력과 농업기술센터를 비롯한 관계 기관들의 지원 덕분이다.
“참외는 기술보다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참외 명장 박진순 씨는 “참외의 성장 속도를 읽어내고 적기에 참외가 필요로 하는 조건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참외 재배의 열쇠”라고 말한다.
참외 이식 전 땅을 단단히 다지자
주위에선 미친 사람 취급 했지만
지금은 모든 농가들이 이랑 다져
2016년엔 대통령 포장·산업포장
명예연구관으로 기술 컨설팅도
자동개폐장치 개발 끈질긴 요구
농촌 인력난 해결 획기적 발명품
한사람이 60동까지 농사 가능케
- 시중에 참외가 한창인 것 같다. 지금이 참외 성수기인가. 하루에 얼마나 생산되고 있나.
△오늘(4월 12일)도 ‘생산자 박진순’이라고 큼직하게 찍힌 성주참외 188상자(상자당 10kg)가 가락동시장에 올라갔다. 요즘 하루 180상자 이상 출하하고 그러면 1천만원 이상씩 현금으로 통장에 꼽힌다. 열흘이면 1억이다. 올해는 2월 8일 처음으로 58상자를 수확했다. 참외 성수기는 5월이 되어야 한다. 이런 생산량이 한동안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8월까지 수확이 계속된다. 이 재미로 농사를 짓는 거 아닌가.
- 도대체 참외 농사를 얼마나 짓고 있나. 참외 농사에서 영농비는 얼마나 차지하고 순수익은 얼마나 되나.
△올해는 800㎡(250평) 규모 비닐하우스 25개동에서 참외 농사를 짓는다. 지난해엔 21개 동에서 3억원의 조수익을 올렸는데 올해는 그보다 좀 많을 것 같다.
그 중 30%는 영농비로 들어간다. 경험상 10개 동을 농사지어서는 남는 게 없더라. 10개동을 넘어서면 그때부터 이문이 생기는 것 같았다. 영농비는 자재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비닐하우스 1동의 시설비만도 300만원이 들어가는데 시설의 수명은 20년 정도지만 비닐은 3년이면 바꿔줘야 하고 속 터널 비닐은 해마다 새로 한다. 비료 농약 박스값 등 영농비도 만만찮다. 오늘 참외 수확에만도 인부 6명이 동원됐다. 참외 농사와 관련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더불어 같이 먹고 사는 거다.
- 지금처럼 수확하려면 언제부터 참외농사를 시작해야 하나.
△ 추석이 지나면 농사 준비를 해야 한다. 10월이면 참외를 심을 밭을 물로터리로 고르고 퇴비를 넣고 땅을 만들어서 씨앗을 넣는다. 11월이면 접붙이기를 한다. 한겨울 비닐하우스에서 참외가 자라면 수정을 거쳐 수확한다.
- 경상북도의 참외명장 1호 타이틀 보유자다. 명장이 되고 무엇이 달라졌나.
△ 명장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또 처음 참외명장에 선정되고는 명예나 자랑보다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았다. 그전에는 그냥 참외 농사를 지으면 되었는데 명장이 되고 나니 수많은 사람들에게 참외 농사의 노하우를 전수해 줘야 했다. 무엇보다 참외농사도 남들보다는 잘 지어야 했다. 지금은 스스로 명장 값을 하려고 노력한다.
- 무엇으로 참외명장이 되었다고 생각하나.
△열심히 부지런히 농사지었다. 특히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다른 사람과는 반대 농법으로 농사를 지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도 겪었다. 그렇지만 역발상이 땅의 이치와 작물의 이치를 꿰뚫어보고 스스로 적용한 것이 성공한 때문일 것이다. 참외를 이식하기 전에 로터리 친 땅을 단단하게 다지자 이웃 사람들이 나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그런데 그 농법이 통했고 이젠 모든 농가들이 ‘이랑 다지기’를 하니 이것 때문에 명장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 농법이 인정받은 셈이다.
- 명장 이외에도 많은 상을 받았을 것 같다.
△농업단체에서 주는 상은 수도 없이 받았다. 2016년에는 참외 농사로 대통령 포장을 받기도 했다. 그때도 농업기술센터에서 와서 귀찮게 굴더니 나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산업포장을 주더라. 참외 기술 컨설팅을 하러 다니면서 지난해에는 경북농업기술원으로부터 현장 명예 연구관이라는 직책도 받았다.
- 참외 농사를 짓기 전에 수박 농사도 지었고 그전에는 도시 생활도 했었다.
△가난한 농사꾼의 자식으로 5남매의 맏이였다.
유산은 손재주와 남에게 지지 않겠다는 의지뿐이었다. 중학을 다니는 둥 마는 둥 했다. 어차피 고등학교 진학은 못할 형편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엔 덩치는 작았지만 동기들에 기죽지 않을 만큼 ‘좀 까불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야심 하나로 일찍 대구로 나와 공장 생활을 했으나 성에 차지 않았다. 양복점 일을 배웠다. 남보다 앞서 재단까지 배워 양복점을 열었으나 양복점이 사양 사업이 되고 임대 점포가 재개발로 헐리게 돼 3년 만에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직 20대였다.
- 참외 농사는 재미가 있었나.
△처음엔 수박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재미가 적었다. 그래서 오래 수확할 수 있는 참외로 바꿨다. 새벽에 일어나 참외 농장에서 일을 하고는 9시면 오전 일과를 마친다. 그때부터 동네 농장들을 순회하면서 내 농법을 다른 사람과 비교도 해보고 다른 사람들의 농법을 배우기도 한다. 그리고는 오후 4시쯤이면 다시 내 농장으로 돌아와 일을 하곤 했다. 부지런하고 억척같이 일했다.
- 비닐하우스 작물 재배에 자동개폐장치가 인력난을 해결하는 획기적 발명품이 됐다. 자동개폐장치 개발에 박 명장의 기여가 크다고 알려졌다.
△우리 작목반 23명 모두가 최소 억대가 넘는 참외 농사꾼들로 한 사람은 지난해 5억4천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혼자서 그렇게 많은 농사가 가능한 것은 모두 자동개폐기 덕분이다. 하우스 보온덮개를 예전에는 모두 수동으로 했다. 친구들과 놀다가도 밤 10시면 보온덮개를 덮으러 갔다. 뒤에서 친구들이 ‘농사 너 혼자 짓나?’ 하면서 핀잔을 주기도 했다. 당시 하우스 18동의 덮개를 모두 덮고 나면 새벽 1시가 넘고는 했다. 그래서 농업기술센터에 자동개폐장치를 개발해 줄 것을 끈질기게 요청했다. 자동개폐장치가 개발되면서 이젠 한 사람이 60동까지도 참외농사가 가능하게 됐다.
- 참외재배 기술은 남에게 잘 가르쳐주지 않는다던데, 참외를 재배하려는 사람들에게 기술을 전수해주나.
△ 참외 농사는 다른 작물에 비해 까다롭다. 그래서 참외 농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 역병이 돌기 전에는 경북대 농대와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참외 재배 컨설팅을 했다. 정부 농촌수출지원단의 일원으로 교수들과 조를 이뤄 참외 재배 컨설팅을 하러 다녔다. 우리 농장으로도 참외 재배 기술을 배우겠다는 사람들도 해마다 수 백명씩 찾아오고 있다.
컨설팅에서 참외 재배 농가에 강조하는 것이 환경이다. 참외 재배 환경을 조성하고 난 다음에 참외를 재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땅의 능력과 특성부터 제대로 정확히 알아야 한다. 토양 성분이나 토질이 다르고 일조량이 다르고 주변 여건이 모두 다른데 한 가지 방식만 고집해서는 참외 재배에 실패하기 마련이다. 참외 재배는 기술보다 환경 조성이 먼저다.
컨설팅에서 또 강조하는 것이 ‘참외는 채소지만 나무처럼 키워라’는 것이다. 참외는 열매를 키우는 것인데 잎만 무성한 채소가 되어서는 품질 좋은 참외를 많이 수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잎은 나무처럼 작고 적어야 한다.
- 참외 재배 현장 컨설팅에서 주로 발견하는 실패 사례는 어떤 것이 있나.
△현장을 확인해보면 무엇이 잘못 됐는지 한눈에 ‘탁’ 보인다. 주위만 봐도 알 수 있다. 땅을 제대로 편편하게 고르지 않으면 물이 한쪽으로 쏠린다. 그러면 작물이 고루 자라지 못한다. 병충해가 농사를 망치기도 한다. 노균병 흰가루병 등 많은 병들은 모두 수분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약을 쳐서 약해(藥害)로 수확량이 줄어들기도 한다. 수확량의 3분의 1은 병충해 때문에 줄어든다.
대학을 나왔다고, 학식이 풍부하다고 농사를 잘 짓는 것은 아니다. 특히 참외 농사는 기술보다는 환경이라고 말하고 싶다. 컨설팅을 갔을 때 산 밑에 하우스가 있어 일조량이 절대 부족한 하우스에서 전력을 기울여 농사짓는 사람에게 하우스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조언했다. 그늘에서는 참외 농사를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참외 재배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어렵나.
△물관리만 하더라도 참외의 성장 속도에 따라, 토양에 따라 다르다. 처음 이식하고 겨울 동안은 물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참외가 한창 자라고 수확기인 지금은 물을 계속 줘야 한다. 토양도 사질토와 마사토 성분의 토양에 따라 다르다. 작물이 크는 속도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물이 필요한지, 비료가 필요한지, 비료는 어떤 성분이 필요한지, 역병은 어떤 병이며 어떤 약을 쳐야 하는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찌 말로 설명될 수 있겠나.
몇 해 전 서울의 한 대학 농학박사가 참외 재배를 연구한다며 우리 농장에 왔다. 그는 처음에는 Ph 농도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여러 실험들을 하더니 나중에는 ‘내 이론은 이 농장의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고 스스로 실토했다. 어느 날 그가 소리 없이 올라가고는 그 후로 소식이 없더라.
- 귀농인들에게도 참외 농사 비법을 아낌없이 전수해 준다고 소문났다.
△젊은 사람이 참외 농사를 짓겠다고 할 때는 최상품의 참외로 돈을 벌 수 있도록 조언해준다. 젊은이들이 의지만 가지면 농업에 대한 각종 지원도 많고 혜택도 많아 도시보다도 더욱 빠른 시간에 자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적극 권유한다. 그런데 환경 논리와 일머리를 모르면 아무리 노하우를 가르쳐 줘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실천하기 어렵다. 이건 학식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참외 재배도 스마트농업 시대다.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하우스 안 참외 성장 상태를 확인하고 원격제어로 온도 습도를 관리할 수 있다.
- 나이 들어 은퇴하고 농업에 뛰어든 사람들에게도 같은 조건으로 할 수 있나.
△나이 든 귀농인들에게는 적당히 농사지으라고 가르치고 권한다. 돈을 따라가다 보면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고 충고해 준다. 농사, 특히 참외 농사는 마음만으로 되지 않는 까다로운 작물이고 힘든 작업이기도 하다. 또 규모의 농사를 해야 일정 수확을 올릴 수 있다.
- 참외 명장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4년 전부터 참외 농사는 주로 아들에게 맡기고 나는 쉬엄쉬엄 지원하는 편이다. 아들 상현(32)은 농수산대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참외 재배에 뛰어들었다.
바람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가업으로 참외농사를 이어받은 아들이 나보다 참외를 더 잘 재배한다는 칭찬을 들었으면 좋겠다.
또 농부로서, 농업인이 우대받고 농민들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 바란다.
□ 박진순(朴鎭淳) 경북 참외명장 1호. 섬들농장 대표.
성주 월항.
빈농의 아들로 손재주와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중학교 졸업 후 대구로 나와 공장 직공과 양복점 경영을 하다 20대에 귀향.
수박 농사를 시작하다 5년만에 참외를 바꿔 현재 연 3억원의 조수익을 올리고 있다.
토양의 성질과 참외 성장과정을 면밀히 관찰해 지역에 맞는 재배 기술을 습득했다.
2004년 경북도 참외명장 1호로 선정되고 2016년 참외 재배로 대통령 포장을 받았다.
연간 수백명이 참외 재배 기술을 배우러 그의 농장을 방문하고 자신도 지역 대학과 농민들을 상대로 참외재배 컨설팅을 했다.
전수받은 아들이 참외 재배에서 자신을 능가하기를 바란다.
/이경우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