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br/>양지방 찻집 대표 이순임
내연산 기슭 천년고찰 보경사를 향하는 길목. 포근한 차향이 산사를 향하는 발걸음을 더욱 따사롭게 채운다. 꽃향기와 각종 약재의 냄새가 오묘하게 어우러지고, 달그락거리는 다기 소리가 봄이 오는 소리를 일깨운다.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460에 위치한 양지방 찻집은 20여 년 전 문을 열었다. 내연산과 보경사를 찾는 이들이 잠시 쉬며 차를 마시는 아담한 곳이다. 20평 남짓한 찻집으로 들어서면 대표 이순임(63) 씨가 오랜 시간 동안 가꾸고 꾸며온 100여 점의 다기와 작은 소품 하나하나에서 소박함이 느껴진다. 마치 숲속에 마련된 작은 별장에 들어선 기분이다.
톨스토이는 ‘차는 영혼의 깊은 곳에 있는 잠재력을 깨운다’고 말했다. ‘차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라 맛있는 물을 함께 나눈다’는 일념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에 집중하며 자신과의 온전한 시간을 제공하고자 한다는 이순임 양지방 찻집 대표를 지난 16일 만났다.
보경사 향한 길목 자리한 지 22년, 숲속 별장 같은 찻집 만들어
맛있는 차 위해 재료 하나하나 직접 손질 ‘티소믈리에’ 자격증도
“누구라도 차 한잔 청해온다면 기꺼이 함께 울고 웃고 싶어요”
-‘양지방’이라는 상호는 누가 지었는가.
△지인들이 상호는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짓는 게 아니라고 해서 2003년 5월 철학관에서 2~3일 걸려 여러 가지 상호를 지어 주셨지만, 그중에 좋은 지혜를 얻어가는 방이란 뜻의 양지방(良智房)이 마음에 들었다. 그게 아니라도 음지·양지 할 때 따뜻한 느낌도 들어서 내가 직접 골랐다.
-양지방 찻집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하나뿐인 아들이 대학 진학을 한 다음 군입대를 하고 나니 갑자기 텅 비어버린 마음을 추스를 방법이 없었다. 나 자신을 찾겠다고, 가장 좋아하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찾은 답이 차였다. 오래전부터 대추차를 잘 끓였다. 너무 비싼 가겟세가 부담되어서 내 집에서 해 보자고 주택가에서 ‘대추차가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집’이란 큰 간판을 걸고 시작했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주택가에서 장사한다고 민원을 제기하는 바람에 지금 이곳 양지방으로 옮겨왔는데, 벌써 22년째다.
-어떤 종류의 차를 팔고 있는가.
△전통찻집으로 문을 열었으니 일단 대추차가 기본이다. 건 오미자를 문경에서 직접 사 와서 12시간 이상을 우려서 걸러 냉차로, 온차로 내놓는다. 이른 봄 솔잎과 솔순을 따다가 며칠을 흐르는 물에 씻어 큰 항아리에 숙성 발효를 시킨 다음에 이 또한 냉·온으로 제공한다. 남편 쉬는 날 깊은 산골 차량이 별로 안 다니는 곳을 찾아 솔잎을 따다가 엑기스를 만들어 둔 것을 8~9년이 넘은 지금까지 손님에게 내놓는다. 처음에는 병에 담아 팔기도 했으나 지금은 재선충 때문에 만들어 팔지는 못하고 가게 손님에게만 내놓고 있다.
-그동안 애로점은 없었는지.
△전통찻집이 쉬우리라고 생각하여 가볍게 달려드는 분들이 많은데 말리고 싶다. 재료를 인스턴트로 구입해서 한다면 몰라도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손을 거쳐서 해야 하는 일들이라, 한두 사람도 아니고 여러 사람 입맛 맞추기가 그리 쉽지 않다. 철 따라 해놓아야 할 것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가장 좋아하는 중국차 녹차 황차 홍차 우롱차 흑차 보이차 등 차 종류만 수백여 가지다. 자격증도 따고, 어떤 차를 어떻게 우리면 더 맛나게 더 향기롭게 우릴 수 있을까 하고 서울까지 수업받으러도 다녔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양지방 찻집을 운영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또 앞으로의 포부가 있다면.
△차 생활 한지가 어언 사십여 년이 되었고, 찻집이라고 열어놓고 지금 이 자리에서만 22년째다. 지금 이 시대가 배고픈 시대는 아니다. 정신이 고픈 시대라서 누구라도 찾아와 차 한잔 청해온다면 기꺼이 함께 울고 웃으며 맞이하고 싶다.
-티소믈리에 자격증을 가지고 찻집을 운영하고 있다. 티소믈리에는 어떤 자격증인가.
△녹차는 녹차답게 홍차는 홍차답게 각 차 마다의 특성을 잘 살려 좀 더 향기롭게 좀 더 맛있게 어떤 다구에 어떤 차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며, 물 온도를 높여야 할지 낮추어야 할지를 맞출 줄 아는 전문자격증을 말한다. 차를 마시는 사람 마다의 개성도 중요하지만, 체질에도 맞게 차를 권하는 것도 티소믈리에가 해내야 하는 몫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찻집 주인이 왜 한복을 안 입고 있느냐는 손님들이 가끔 있다. 물론 의복은 그 사람을 표현하는 목적이 있지만, 차를 맛나게 우리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단정한 모습으로 정성을 다해 차를 우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찻집인데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관광지라고 한번 휙 다녀가는 분도 있지만, 한국은 일일생활권이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든지 오갈 수 있다. ‘일상생활 속 차문화’를 추구하며 한자리에 이십여 년 있다 보니 그때 그 주인 맞나요 하고 찾아오는 분이 꽤 늘었다.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양지방 찻집만의 정겨운 이미지를 한층 높여 보경사를 찾는 많은 사람이 우리 찻집을 들러서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입덧 심했던 임산부, 하늘나라로 가신 요양원 어르신들, 그 자제분들…. 참 많은 사연이 깃든 곳이다. 그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울고 웃던 옛일을 추억하는 일이 내가 찻집을 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사는 날까지 이렇게 살다가 갈 수 있기를 욕심내어 본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