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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친절

등록일 2022-04-12 18:17 게재일 2022-04-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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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태​​​​​​​수필가
조현태수필가

온 산에 들에 봄꽃들이 다투어 피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만남을 자제하다가 이 봄을 즐기자며 지인 몇이 소풍을 제안했다. 필자 또한 싫지 않아 대뜸 동의하고 시간 맞춰 집합장소에 갔다. 소풍을 제안한 사람이 장소를 소개했다. 한적한 산 속에 아담한 집을 지어놓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어울리는 곳이란다. 다른 한 친구는 그의 닭장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장닭을 잡아 왔다. 일행 중 한 여인은 음식 조리솜씨가 매우 뛰어나서 각종 한약재와 함께 닭백숙을 끓였다. 이런 사람들에 덩달아 봄바람 난 필자는 각종 술과 음료수에 약간의 과일을 사들고 갔다.

작은 별장 같은 마당에 장작불로 끓이기 위한 아궁이와 솥도 준비되어 있었으니 도착하자마자 바로 불을 피웠다. 아궁이 옆에는 원탁과 의자도 있어서 각자 취향대로 마시도록 막걸리와 소주, 여인이 마실 백세주까지 내놓았다. 거기다가 잠깐 만에 산에서 두릅순과 산나물도 조금 뜯어 왔다. 그 기막힌 분위기와 기분으로는 멀뚱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마련해 간 반찬과 산나물을 안주로 술잔이 오락가락했다. 저절로 휘파람이 나올 만큼 봄소풍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드디어 잘 익은 닭고기를 뜯어가며 맛과 흥취에 빠졌다. 제법 농담도 섞어 웃어가며 서로 칭찬했다. 어느 순간 한방 닭백숙 삶는 방법도 전문가 수준이라며 극찬하던 친구가 고기를 조금 뜯어 여인 입으로 갖다 주었고, 여인은 남이 먹여주니 더 맛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 챙겨주는 시범’이라며 두어 차례 더 고기를 건넸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그 여인의 남편이 못마땅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남의 아내에게 그따위 애정행각을 하느냐고 투덜거릴 수는 없었으리라. 남편 분이 꾹 눌러 참고 있는데 막판에 솥에 남은 닭죽이 눋겠다며 친구가 물을 더 부었다. 그 순간, 닭죽 맛 떨어지게 물 부었다고 화를 벌컥 냈다. 죽이 눌어붙을 정도여서 물 조금 부어도 괜찮은데 무슨 화까지 내느냐고 여인이 설명했다. 대뜸 남편 분의 입에서‘당신은 지금 누굴 두둔하고 나서느냐?’까지 말이 나오고 말았다. 전체 분위기가 머쓱해졌다. 단순히 술 취한 탓은 아닌 듯 했다.

친구 입장에서는 음식솜씨 좋은 여인 잘 챙겨주려는 친절을 장난삼아 했고, 아까운 음식 남김없이 먹자는 행동이었다. 남편 분 입장은 고기 쌈 싸 주는 자나 날름 받아먹고 맛나다고 하는 자나 똑같다 생각했겠지. 여인 입장에서는 남편 몰래 바람피운 것도 아닌데 아는 이웃끼리 뭘 그리 까탈스러울까 싶었을 터이다. 필자 입장에서 보면 솥에 물 부은 것에서 화낸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고 다른 남자가 자기 아내에게 고기쌈 챙겨주므로 기분이 나빴다고 보았다.

사회 곳곳에서 이런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는가 생각해 본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만으로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행위 때문에 벌어지는 난처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난처할 정도를 넘어서 치고받고 싸우거나 심하면 전쟁까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남은 결과는 쌍방피해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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