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어촌 모든 마을에는 해신당(海神堂)이 있고 음력으로 3월3일에는 각 어촌계 별로 동해대신위(東海大神位)에게 해신제를 올린다.
따라서 2022년 해신제는 4월3일 올렸다. 울릉도는 저동어촌계, 신흥, 도동, 통구미, 남양, 학포, 태하, 현포, 천부, 죽암어촌계 등 10개의 어촌계가 있고 모두 해신당을 갖고 있다.
울릉도에서 가장 큰 어촌계인 저동어촌계(계장 박일래)는 해신당이 두 곳이다. 과거에는 12개 어촌계였다. 구암어촌계는 남양어촌계와 통합했고 사동어촌계는 항만건설로 공동어장이 사라져 어촌계와 함께 해신당도 사라졌다.
울릉도 내 각 어촌계는 4월2일 밤이나 3일 아침에 모두 해신제를 올렸다. 저동어촌계는 2일 밤 박일래(69)어촌계장의 주관 아래 각 선단 대표들이 함께 해신제를 올렸다.
제사상에는 돼지 머리는 기본으로 각종 과일과 문어 등 풍성한 해산물, 떡, 육류 등 푸짐하고 풍성하게 상을 차려 제사를 올리고 음식을 나눠 먹는 행사를 한다.
요즘에는 대부분 절에 있는 스님들이 집도하지만 과거에는 어촌계장들이나 제주를 따로 정해 제사를 지내는데 엄청나게 엄격하고 제사를 지내기 전까지는 몸을 단정하게 해야 한다.
과거에는 1년 전부터 흉사에는 일절 참석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쁜 일에는 절대 참가하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깨끗하게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다해 제사를 올린다.
박일래 저동어촌계장은 “과거 1년 동안 흉사에 참석하지 못할 만큼 엄격해 사촌 형님이 돌아가셨는데 참석하지 못해 지금도 형수와 사이가 좋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에 대해 “흉어가 되거나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해신제를 잘못 지내 그렇다는 원망을 듣지 않기 위해서다.”고 말했다.
울릉도의 동제는 산신제(山神祭)와 해신제(海神祭)가 공존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울릉도의 지역사, 인구변동, 마을의 형성 과정, 제의 수행집단의 변화들과 관련된다.
이 두 가지 민속제의가 형성된 과정은 거시적 차원에서 국가 사의 변화와 관련될 뿐만 아니라 미시적 차원에서 울릉도 주민들의 생활문화 및 생업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 울릉도 동제의 구성 형태 변화는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울릉도의 해신제로는 개인이 동제당에 들러서 행하는 유형과 주민들이 공동으로 행하는 동제 유형이 있다. 성하신당에서 행하는 해신제는 ‘배고사’라고 해 선주나 어로작업을 하는 사람, 집안에 우환이 있는 사람 등이 성하신당에 와서 기도를 드리는 등 개인이 행하는 유형이다.
특히 배를 만든 사람은 어떠한 종교를 믿더라도 여기에 와서 무사고와 선원의 안녕을 빈다. 또한, 군민의 안녕 및 풍어, 풍년, 해상작업의 안전을 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해신제를 태하동에서 주로 지냈다.
1997년부터 동제와 해신제를 통합해 제사를 지낸다. 태하동에서는 해신제를 뱃고사라 하기도 한다. 처음 배를 짓게 되면 선주는 태하신당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학포의 해신제는 동제 유형이다. 이곳의 해신제는 마을 남쪽에 있는 산왕각에서 행한다. 현판에는 칡덩굴에 종이와 솔잎을 끼워서 달아 두었으며, 제당은 양철지붕에 돌로 벽을 쌓았다.
입구에는 ‘뿔뚜나무’(보리수)가 서 있다. 제당 내부에는 해왕신위(海王神位)와 울릉도산신대왕신위(鬱陵島山神大王神位)가 모셔져 있고, 각 위패에는 백지를 접어서 덮어 두었다.
즉 현판은 ‘산왕각’이지만 주민들이 ‘해신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선(先)주민들이 산신을 주로 모시다가 일제강점기 이후 어업의 비중이 커지면서 해신을 동시에 합설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