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가 70년대 초 간첩단 사건 때문에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간첩단 사건이 조작사건으로 밝혀지면서 울릉도에 오래 산 주민들은 패닉에 빠졌다.
당시 중앙정보부 직원이 울릉도에 들어와 상주하고 간첩 혐의가 있던 주민이 어선을 이용한 북한과 접선, 주범으로 지목된 분의 주택과 삶 등을 볼 때 당시 울릉도주민들은 모두 간첩으로 인식했다.
중앙정보부 직원들이 간첩을 잡고자 엿장수 등으로 위장해 주민들과 접촉하는 등 일망타진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울릉도 토박이로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주민들은 이 사건을 잘 알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정부에 의해 조작됐다고 발표하자 주민들은 황당해 했다. 이 같이 조작된 간첩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된 책이 발간된 것이다. 아직도 진짜 간첩사건으로 믿는 당시를 잘 아는 주민들은 한번 쯤 읽어볼 만하다.
울릉도 간첩단 조작 사건은 지난 1974년 3월15일 중앙정보부가 울릉도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간첩을 일망타진했다고 발표했다.
총 32명이 연루 됐고 이중 사형 3명, 무기징역 4명과 징역 총 119년형을 받았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다른 사건에서 실패한 수사관이 실패를 만회하고자 꾸며낸 작품이었다는 설명이다.
1973년 8월 전 김대중 대통령 납치 사건과 같은 해 10월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 사건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에 대한 여론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또한, 북한은 '남조선혁명론'에 따라 1960년대까지는 공작원을 활발하게 남파했지만 1970년대 들어 그 빈도가 확연히 줄었다.
1960년대를 거치며 비대해진 박정희 정권의 대공·방첩 기구는 거대조직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 의심받고 있었다. 중앙정보부로서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큰 것 한 방'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중정은 내사 상태를 유지했던 이런저런 수사 건들을 하나의 간첩단 사건으로 확대·조작할 유혹을 강하게 느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결과가 바로 '울릉도 거점 간첩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간 책 '울릉도 간첩단 조작 사건'(책과 함께 발행)은 '울릉도 거점 간첩단' 조작 사건의 배경에서부터 전개와 실상, 이후 피해자들의 삶,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파헤친다.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