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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려 살아가는 모든 이야기가 수필”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1-12-19 19:59 게재일 2021-12-2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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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수필가 박월수<br/>등단 10여 년 만에 첫 책 출간<br/>치열하게 살아온 삶 흔적 담아<br/>“책 빚 갚는다는 생각으로 엮어<br/>독자들에게 작은 위안 됐으면”
박월수 수필가
박월수 수필가

“더러 사는 일이 버겁다고 여겨질 때, 여기 실린 몇 편의 글에서 작은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떠올려지는, 머무르고 싶은 구절들이 많은 분의 숨들이기에 묻어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최근 첫 수필집 ‘숨, 들이다’(수필세계사 간)를 펴낸 박월수(56·청송군 현동면) 수필가의 출간 소감이다.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수필가로 등단한 이후 10여 년만이다.


박 수필가는 일상적 체험을 중심으로 한 사색의 깊이와 은유적 성취가 탁월하고 감각적 언어로 진단해가는 자기 모색이 남다르다는 평을 받는다.


지난 18일 박 수필가를 만나 이번 수필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첫 수필집을 펴낸 소감은.


△너무 내 속을 드러내 보인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수필은 한 개인의 역사이기 이전에 어쩌면 우리 모두의 역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도 든다. 사람들 살아가는 얘기는 다 다르지만 그 속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중심엔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이웃이 있듯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든 얘기가 한 편의 수필이라고 생각한다.


-‘숨, 들이다’를 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등단부터 거의 이십 년 가까이 문단에 있었는데 그동안 쓴 글이 백여 편 남짓이다. 과작이란 말을 가끔 듣는다. 독자에게 커다란 울림을 줄 확신도 없으면서 종이를 낭비하는 일이 두려웠다. 책을 낸 작가분들이 동료 작가들에게 무상으로 보내오는 책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다. 내 책을 궁금해하고 기다리는 분들의 채근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디딤돌 창작지원금 수혜를 받아 늦게나마 첫 수필집을 내어놓게 되었다.


-수필집 제목이 특이한데.


△두부 만드는 장면을 우연히 본 일이 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콩물을 끓이고 젓고 간수를 붓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숨을 들인다고 했다. 숨 들이는 과정의 마지막이 간수를 붓는 단계였는데 자칫 잘못하면 다 만들어 놓은 두부를 버릴 수도 있었다. 매 순간 콩물에 간수를 붓듯 정성을 들이는 일, 나는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며 숨 들이는 일이라고 이해한다. 어눌한 글이지만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이므로 그토록 아름다운 우리말을 표지 제목으로 빌려오고 싶었다.


-이번 수필집은 어떻게 구성됐나.


△1부에서 4부까지는 주로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다. 뻔한 얘기지만 뻔하지 않게 쓰려고 무진 애를 썼다. 어둡지만 절망이 아닌 희망을 노래하는 얘기들을 주로 실었다. 마지막 5부는 내가 사는 청송의 이야기들로 묶었다.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에 등재된 아름답고 의미 있는 곳들을 알리고 싶어 그림을 그리듯 풀어서 썼다.


수필집 ‘숨, 들이다’
수필집 ‘숨, 들이다’

-수록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수필은.

△내가 가장 애착하는 수필은 ‘새’다. ‘달’이라는 작품으로 신춘에 등단하고 나니 글을 쓰는 일이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달’보다 더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새’는 띠라고 하는 식물로 제주 방언인데 예전 제주 사람들은 그 새를 베어다가 지붕을 이는 데 주로 썼다. 사진 모임으로 우도에 갈 때마다 바람에 흔들리는 새의 물결을 보았고 무언지 모를 벅찬 감동에 사로잡히곤 했는데 수필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끝없이 누웠다 일어서는 새가 어쩐지 나를 닮은 듯도 했다. 그러다가 새가 자신의 씨앗을 바람의 힘으로 번식한다는 걸 알았고 결국은 땅에 사는 식물이 새가 된 이유를 제 나름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식물의 삶과 사람의 삶도 살아가는 방식은 닮아있다.


-좋은 수필이란 어떤 것인가.


△먼저 진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필은 작가의 체험이 녹아든 글이므로 솔직하고 진실해야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다음은 참신한 소재와 탄탄한 구성, 통일감 있는 주제가 받침이 되어야 한다. 나머지는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을 들고 싶다. 상상력이 결여된 글은 메마른 사막과 같아서 음미하기가 쉽지 않다. 작가만의 해석으로 촘촘하게 짜인 글, 남다른 상상력이 살아 숨 쉬는 글, 그런 수필을 나는 좋은 수필이라 생각한다.


-앞으로의 바람은.


△나는 수필을 연인 대하듯 쓰다듬고 보듬길 좋아한다. 그런 수필을 꾸준히 오래도록 쓸 것이다.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테마수필을 써 보고 싶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수필만큼 타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수필 한 편엔 한 편의 인생 다큐가 들어있다. 있는 그대로의 것을 다만 문학적 장치만을 가미해 표현해 놓은 까닭이다. 좋은 수필을 읽으면 잔잔한 울림이 있고 반성이 있으며 살아갈 힘이 생기기도 한다. 이처럼 따뜻한 수필을 많이 아끼고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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