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500여 편 응모… 대상·금상 등 모두 10점 입상의 영예<br/>“수상작들 소재 너머의 것 바라보는 상당한 수준의 안목 갖춰”
‘제5회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수상작이 선정됐다.
영예의 대상에는 예로부터 옛 여인들의 굴레였던 조새가 현대 여성들의 삶의 든든한 무기가 돼주기를 희망하는 김희숙(53·부산시·사진) 씨의 수필 ‘조새’가 선정됐다.
금상에는 김원순(경남 창원시) 씨의 ‘저승꽃’, 은상 변재영(대구시) 씨의 ‘맷수쇠’, 동상 유옥희(대구시) 씨의 ‘칼 좀 갈아’·지영미(경북 청도군) 씨의 ‘놋쇠 종’이 각각 뽑혔다.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은 현대문명의 상징이자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돼온 철강산업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고 재도약을 기원하기 위해 포항시 주최, 경북매일신문·스틸에세이 운영위원회 주관으로 올해 5회째 개최됐다.
올해 공모전은 지난 8월 20일부터 10월 27일까지 국내외 거주자(기성문인 포함)를 대상으로 공모를 실시한 결과 호주를 비롯 서울, 경남, 전남 등 국내외에서 철에 관한 추억이 담긴 500여 편이 응모해 대상 1점, 금상 1점, 은상 1점, 동상 2점, 가작 5점 등 모두 10점이 입상의 영예를 안았다.
공모전 심사를 맡은 김은주·김한성 수필가는 “‘제5회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 수상작들은 무엇보다 철이라는 일차원적인 소재의 억압에서 벗어나 소재 너머의 것을 바라보는 상당한 수준의 안목이 작가의 개성과 주제의 통일성, 효율적인 구성, 체험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성을 돋보이게 하는 의미화 형상화에 이른 좋은 작품들이었다”고 전했다.
대상 수상 소감
당선 전화를 받고 가슴이 두근거려 진정이 잘 되지 않습니다. 기쁘기보다는 덜컥 겁부터 나서 당선 글부터 찾아 읽었습니다. 제일 먼저 그동안 저를 지도해주신 김정화 선생님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탄성을 지르시면서 우셨습니다. 그제야 실감이 났습니다.
외할머니 동네에서 많은 생활을 한 저에게 조새는 익숙한 물건입니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글의 소개가 되리라고 여기지 않고 지나쳤습니다. 우연히 바닷가에서 만난 고향할머니 덕분에 조새를 자세히 들여다보았고 글을 쓰기 위해 대장간을 찾아가 만드는 과정도 지켜보다가 조새 하나를 사와서 책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조새는 과연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를 쓰다듬고 만지며 몇 달을 지켜보았습니다.
조새는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외할머니와 이모들 곁에서 바닷가를 오르내리던 어린 날의 추억을 소환해 왔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외할머니의 등 굽은 뒷모습이 떠올라 코끝이 찡해지며 간절히 뵙고 싶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살아 계시다면 당선 소식에 무척이나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을 주최한 경북매일신문 관계자님들과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격려로 지도해주시는 김정화 선생님에게 이 영광을 모두 드리고 싶습니다. 초고 글의 첫 독자가 되어주는 딸과 사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글 소식을 전할 때마다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부족한 글이지만 계속 쓸 용기를 얻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어려운 시간은 걷히고 위드코로나로 나아갑니다. 내려가는 골이 깊었던 만큼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올라갈 일만 남았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자고 전하고 싶습니다.
△1969년 전남 영광 출생
△2021년 ‘수필과 비평’ 등단
△저서 ‘길을 묻는 인생에게’, ‘사주로 못 풀어 낼 인생고민은 없다’, ‘운명의 블랙박스’
대상 수상작
‘조새’
바위에 부딪친 파도가 하얀 가루로 부서진다. 육지까지 올라올 것처럼 밀어붙이는가 싶더니 어느 샌가 뒷걸음치는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그제야 파도에 몸을 내어주었던 바위들이 바닷물 사이로 하나둘 되살아난다. 해안가 사람들이 오밀조밀 동네를 이루듯 갯바위에도 다닥다닥 갯것들이 모여 산다. 숨어 있던 게들이 슬그미 기어나오고 엎드렸던 따개비와 굴들은 참았던 긴 숨을 토해낸다.
추위가 뻣속까지 스며드는데 낡은 가방을 멘 노인이 얼른거린다. 한손에는 바구니를 들었고 다른 손에는 길쭉한 쇠갈고리를 쥐었다. 이 바위에서 저 돌 위로 겅중거린다. 적당한 자리를 물색했는지 굽은 허리를 더욱 깊숙이 구부린다. 돌돌 말아놓은 거뭇한 보따리 하나 바위에 얹어 놓은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손에 들린 것은 조새라고 불리는 도구이다.
조새는 굴과 짝이다. 낫이며 호미와 삽은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데 조새는 오로지 굴을 채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이다. 함평장날이면 장터에 대장간이 문을 연다. 입구에 폐차장에서 사온 두꺼운 강철판을 쌓아놓았다. 한 시대를 살아낸 폐강판에는 멍자국 같은 검붉은 더께가 두껍게 앉았다. 대장장이는 강판을 용접불로 길쭉하게 자른 뒤 불에 달구어 무거운 쇠망치로 내리친다. 수없이 내쳐지는 망치 끝에서 시뻘건 쇳덩이의 낡은 허물이 한 꺼풀씩 흘러내린다. 마치 우화하는 나비처럼 버려진 강판이 손끝에서 어구와 농기구와 공사장 연장으로 탈바꿈한다. 인간의 삶도 변하려면 저렇게 달궈지고 세상의 망치질들을 견디는 시간이 필요한 것인가. 인고의 시간을 버텨낸 조새들이 어깨를 한껏 들먹이며 대장간에 도열해 있었다. 큰 날은 쪼뻣한 쇠를 두툼한 나무 끝에 끼우거나 길게 반원으로 휘어 꼬아 무게감을 주었다. 반대편 작은 날은 연한 굴을 드러내기 편하도록 얇은 쇠고챙이 끝을 날카롭게 벼려서 약간 구부렸다. 감히 작은 용구라고 가벼이 여길 수 없다.
노인이 조새로 굴을 까기 시작한다. 눌러쓴 모자 아래로 검은 머리카락을 찾아보기 어렵다. 마흔 살에 남편을 여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자식들은 대처로 나가 제 앞가림 정도는 하겠지만 자신의 생활비는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썰물을 기다렸으리라. 밀물 때까지 몸을 바지런히 움직이면 하루 몇 만원어치는 거뜬히 얻는다는 목소리가 추위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다. 올해는 여름 장마가 긴 탓에 석화 수확량이 적다면서 조금이라도 굵은 씨알이 있는 바위로 옮겨 다닌다.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손은 쉬지 않고 조새를 움직인다. 노인의 손놀림이 기계처럼 정교하다. 쇠의 무거운 쪽 끄트머리가 새부리마냥 뾰족하다. 닭이 모이를 쪼듯 굴 껍질을 향해 탁탁 내리치면 아무리 단단한 껍데기라도 단숨에 부서진다. 벗겨낸 표피 속에서 바다가 그동안 키워둔 굴이 탱글탱글한 자태를 드러낸다. 곧바로 조새가 방향을 돌려 날갯짓을 하니 가느다란 쇠꼬챙이 끝에 부드러운 속살이 매달렸다. 일련의 행동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숙련된 칼잡이의 동작처럼 재빠르다. 노인이 굴을 보지 않고 던지는데도 자석에 쇠가 따라붙듯 쏙쏙 빨려들어간다. 뽀얀 굴들이 수북이 쌓인 바구니에 바다향이 밀려와 코 끝에 닿는다. 노인의 굴 까는 모습에서 삭풍 부는 바위에 웅크리고 앉아 굴을 좇던 외할머니를 소환해 온다.
한국 전쟁 중에 외할머니는 남편을 잃었다. 공산군이 마을 장정들을 학살할 때 외할아버지도 억울하게 희생당하셨다. 안타깝게도 첫아이인 내 어머니를 임신한 상태였다. 유복자였던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채 살길이 막막해진 외할머니는 새 삶을 택했고 두 딸을 더 낳았다. 조새는 나무 손잡이가 중앙에 있고 좌우로 전혀 다른 형태의 쇠갈퀴가 부착되었다. 그 생김새는 성씨 다른 이모들과 어머니가 외할머니의 양 옆에 기대어 사는 모습처럼 좌우 대칭을 이루지 못하고 매우 기형적이다.
동백꽃이 흐드러진 동백끼미는 서해 바닷가 마을이다. 경사가 심해 밭농사만 지을 수 있을 뿐 바다 외에는 생계를 위해 바라볼 것이 없는 동네였다. 여인들은 남자들이 개매기 어업으로 잡아 온 생선을 손질하거나 손에 물집이 잡혀 물러터지도록 호미질을 해가며 넓은 갯벌에서 어렵게 조개를 캤다. 바닷물이 빠지고 나면 물기 머금은 바위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쪼그리고 앉아 굴을 까는 작업도 여자들에게 고된 노동 중 하나였다. 동네 해안에 굴이 잘 자라주면 그나마 나았으나 굴 흉년이 든 해에는 다른 마을까지 굴 까기 품팔이를 다녔다.
굴 까는 일은 주로 늦가을부터 겨울동안 이어졌다. 외가에서도 동네 사람들처럼 집안 여자 숫자대로 조새를 준비해 두었다. 외할머니 조새와 이모들 조새 그리고 어머니 조새가 나란히 흙벽에 걸려있었다. 그 중에는 내가 쥐던 새끼 조새도 있었다. 이모들과 어머니는 자신들의 처지를 닮은 조새를 들고 간조 시간을 기다려 찬 바다로 내려갔다. 두쇠날의 역할은 다르지만 한마음으로 움직여야만 굴을 깔 수 있는 조새처럼 삶이라는 거센 바다에서 그녀들은 서로를 지탱해주는 조새의 양쪽 날개였다.
조새를 벽에서 내릴 때는 어디선가 찬기가 일었다. 그럴때면 조새는 북쪽에서 냉풍을 몰고 날아오는 철새 같았다. 외할머니는 숫돌에 조새 날을 슥슥 갈아 여름내 쌓인 붉은 녹을 털어내었다. 쇠 날을 가는 당신의 뒷모습은 금방이라도 땅속으로 꺼져버릴 것처럼 고단해보였다. 염분에 썩어가던 나무 손잡이는 장날 대장간에 가지고 가 새 걸로 갈아 끼워왔다. 양날이 잘 벼려진 조새는 생존이라는 전장에서 자신을 보호할 갯마을 여인들의 수단이었다. 짭쪼름한 굴이 바닷가 아낙들의 농한기 수입원이 되어 줄 때 조새는 양쪽 날개를 퍼덕이며 그들을 도왔다. 조새는 외할머니에게서 어머니와 이모로 다시 그들의 딸로 흘러가던 바닷가 여인들의 운명을 대변하였다.
노인의 굴 까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노라니 박물관 사진에서 본 옛날 조새가 떠올랐다. 도자기 운반선 안에서 발견되었다는 고려시대 조새 형태가 지금 노인이 들고 있는 것과 유사하여 적잖이 놀라웠다. 비슷한 모양이기에 굴을 채취하는 방법도 예전 그대로이지 않을까. 그동안 여자들의 굴 까는 방식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이 미치자 마치 천 년 전 여인이 눈 앞에서 굴을 줍는 것은 아닌지 착각마저 든다.
긴 세월동안 조새를 손에 쥔 여인들의 삶은 과연 얼마나 변화했을까. 이제 갯가 딸들은 시대를 되풀이하던 조새를 이모들과 어머니 세대에 놔두고 대도시로 나간다. 바닷가에서 손이 부르트도록 조새를 쥐지도 않으며 그 존재조차 잊고 살아간다. 조새를 잊은 현대 여자들은 과거 그녀들의 운명에서 벗어난 줄 알지만 모습이 바뀐 또 다른 조새를 손에 들고 생활전선에 서 있는 건 아닌지. 앞서 살아간 갯가 여인들이 온몸으로 생을 버텨내었듯이 뒤따르는 딸들도 삶과의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때,새로운 조새는 그들에게 굴레가 아닌 든든한 삶의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발밑까지 물이 차오르니 노인은 주섬주섬 조새와 바구니를 챙겨 해안가로 올라간다. 사라지는 노인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먼 시간 여행이라도 다녀온 듯 몽롱해진다.
심사평
철의 도시 포항에서 2017년에 시작된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이 올해로 제5회를 맞게 되었다. ‘코로나19’의 어려운 상황이지만 전국에서 많은 응모자가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고 멀리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도 작품을 보내왔다.
500여 편의 많은 응모작 중에서 예심을 통해 본심에 올린 작품은 20편이었다. 심혈을 기울여 쓴 귀중한 작품들을 논의를 거듭하며 심사한 결과 10편을 고르는데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저마다의 개성과 주제의 통일성, 효율적인 구성, 체험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성을 돋보이게 하는 의미화 형상화에 이른 좋은 작품들이 많아 심사에 어려움이 컸다. 그렇지만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것은 심사 위원들에게는 즐거움이고 행운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까지 ‘조새’, ‘저승꽃’, ‘맷수쇠’를 놓고 숙의를 거듭한 결과 ‘조새’를 대상으로 뽑는 데 의견을 모을 수 있었다.
조새는 굴을 채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이며 좌우에 전혀 다른 쇠갈퀴가 붙어있다. 이 생김새에서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성씨 다른 이모의 모습을 발견한다. 공산군에게 학살당한 외할아버지의 유복자인 어머니와 새 삶을 택해 낳은 이모를 보고 대칭을 이루지 못한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치밀한 구성과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표현하는 간결함이 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사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잘 그리고 있다.
금상으로 뽑은 ‘저승꽃’은 하늘색 철 샛문에 저승꽃이 만발했다로 시작된다. 저승꽃을 피우는 샛문을 드나들 때마다 귀천하신 어머니의 육신에 피었던 저승꽃을 떠 올린다. 그러나 샛문의 녹은 더는 저승꽃이 아니다. 문지르고, 닦고, 긁어내면 찬란한 꽃으로 부활한다. 하늘색 샛문을 여니 가을 산이 온통 붉은 녹을 뒤집어썼다로 마무리했다. 작품을 구성하고 표현하는 글쓰기 능력이 상당한 수준임을 느낄 수 있다.
은상 ‘맷수쇠’는 맷돌 아래짝 중심에 박힌 뾰쪽하게 생긴 작은 쇠인 맷수쇠가 형을 닮았다는 생각이 작품의 주제이다. 장남의 멍에를 메고 병든 부모님과 세 동생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형. 맷수쇠를 보면 작지만 옹골진 몸피로 태산처럼 살다간 형의 모습이 언뜻 언뜻 비친다. 소재의 참신성과 맷돌에서 어처구니 보다 훨씬 중요한 맷수쇠를 발견하고 가정을 떠받쳐준 형의 큰 삶을 진솔하게 표현하여 잔잔한 감동을 준다.
대상, 금상, 은상, 동상, 가작으로 뽑는 데는 저마다의 개성과 특징이 살아 있는 작품이어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심사 결과 지금까지 주위에 흔한 솥, 가위, 칼 중심에서 벗어나서 조새, 맷수쇠, 작두샘 등 숨어 있는 소재들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많은 작품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지만, 입상작에 넣지 못하게 되어 아쉬움이 컸다는 점을 밝혀둔다. 실망하지 말고 다음 기회에 꼭 재도전 하여 더 큰 영광을 얻게 되기를 빌어 본다.
열 분의 수상자 여러분께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심사위원 수필가 김은주·김한성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