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모든 국가에서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다. 외국인들은 딱지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달고나 뽑기 등 한국의 골목 놀이에 열광한다. 프랑스 파리에 오픈한 오징어 게임 체험관에는 드라마 속 놀이들을 직접 해보려는 파리지앵들이 긴 줄을 서기도 했다. 거액의 상금이 걸린 살인 게임이라는 설정이 긴장감을 유발하면서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독특한 의상, 기묘한 화면의 구도와 색감이 청년 세대의 트렌드를 반영한 것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빈부격차, 양극화 등 세계 공통의 시대적 요소를 담아낸 것이 주요했다. 특히 젊은 세대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데, 청년들은 드라마 속 캐릭터들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성기훈, 조상우, 강새벽, 알리, 지영 등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생의 벼랑 끝에 몰려 더는 갈 데가 없는 이들이다. 게임에서 탈락하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목숨을 건 데스매치에 참가한다. 현실에서의 삶이 더 지옥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결국 서로 죽고 죽이는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이 사람도 살아야 하고, 저 사람도 살아야 한다. 꼭 살아서 상금을 차지해야 할 각자의 사정이 있다. 하지만 단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다. 게임을 거듭할수록 생존자는 줄어들고 탈락자의 목숨 값인 상금은 오른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것은 물리적 힘, 두뇌 회전 속도, 행운과 불운의 차이지만, 현실의 지옥 대신 차라리 목숨을 걸고 인생 역전을 노리는 이들의 절박함만큼은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가장 역겨운 장면은 깡패 덕수와 한미녀의 화장실 정사 신도 아니고, 자신을 따르던 외국인 노동자 알리를 속여 죽음에 이르게 한 상우의 야비함도 아니다. ‘VIP’로 불리는 세계 각국의 부자들이 동물 가면을 쓴 채 마치 경마를 즐기듯 가난한 사람들의 살인 게임을 관람하던 대목이다. 시청자들은 그제야 ‘오징어게임’이 사람을 체스마로 삼은 부자들의 유희였음을 알고 씁쓸함을 느낀다. 사채업자에게 신체 포기각서를 써주고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게임에 참가한 456번, 외국인 노동자로 고국의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199번, 북한에 있는 엄마를 데려오고, 보육원에 맡긴 동생과 함께 지낼 방 한 칸을 얻어야 하는 67번… 이 모든 ‘사람’의 간절함이 VIP들에게는 그저 벌레들의 우스꽝스런 몸부림으로 보일 뿐이다. 라운지에서 게임을 내려다보는 VIP의 시선으로 화면이 전환될 때, 시청자들은 마치 자신의 삶이 농락당하는 것 같은 당사자성을 감각하게 된다.
대장동 개발 비리에 수많은 공직자와 여야 정치인들이 연루되었다.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은 화천대유로부터 50억 원의 퇴직금을 받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을 수사했던 박영수 전 특검도 특혜 의혹에 휩싸여 있다. 국민들의 박탈감과 분노가 극에 달한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전세자금대출과 신용대출을 규제하면서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주거 안정 기회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집값을 올려놔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꾸게 해놓고, 전세를 장려하더니 막상 전세대출을 막아버린 것이다. 정부가 가계부채를 줄이겠다며 대출을 틀어쥐는 동안 33세의 한 중국인이 89억 원짜리 도곡동 타워팰리스 펜트하우스를 전액 은행 대출로 매입한 사실이 알려져 국민들을 허탈하게 했다. 한편 내년 1월부터 암호화폐 과세가 시행되는데, 주식에 비하면 갈취라 할 만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 투자자 보호는 하지 않고 세금만 걷겠다는 정부 방침에 2030 투자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 차버리는 기성세대의 행패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금요일 저녁, 차가운 가을비가 내린다. 다음 문장을 골똘히 생각하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배달대행 라이더 어플에서 피크타임이라며 높은 단가에 배달하라고 부추긴다. 원고도 쓰고 강의 준비도 해야 하는데…. 빗길 운전은 위험하다. 하지만 단가가 높다.
고민을 거듭하다 한 5만원이라도 벌고 오자며 우비를 챙겨 입고 스쿠터에 시동을 걸었다. 몇 건의 배달을 마치고 집에 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이번 판에선 살아남았지만 다음 판에선 죽을 수도 있다.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빗길에서,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공장에서, 거리두기로 파리만 날리는 식당에서 우리들의 오징어게임은 계속 된다. 한국사회의 VIP인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은 저 높은 곳에서 가면을 쓴 채 낮은 데서 벌어지는 비참한 생계의 분투를 웃으며 지켜볼 것이고, 우리끼리 죽고 죽이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