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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사진전 해보고 싶어”

등록일 2021-10-11 19:47 게재일 2021-10-12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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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윤 ⑤<br/>작가정신과 남은 과제들
이도윤의 ‘다리 가설 공사’, 1970년대.

작가 이도윤은 평생 사진을 찍으면서 어떤 일을 겪었을까? 그리고 사진작가는 어떤 자세로 사진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그 밖에 남은 생에 그가 이루고 싶은 일에 대해 들어보았다.

 

“‘생업’은 단순히 직업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절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지.

아낙네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감자를 팔러 장으로 가는 것일까, 아니면 어린

자식들에게 저녁을 먹이러 가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사진이지”

 

“요즘 사진전에 가보면 사진과 관련된 사람들만 오는데 이건 좀 아쉬워.

왜 사람들이 사진전에 별로 오지 않는지 사진계에서 고민하고 개선책을 찾아야 해”

 

조 : 평생 사진을 찍으면서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이 : 오죽하겠어. 별일이 다 있었지. 간첩으로 몰려 파출소에서 조사받은 적도 여러 번 있었어.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버스 타고 걸어서 시골로 들어가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니 이상하게 생각했겠지. 당시에 시골 사람들 신고 정신이 투철했거든. 카메라 장비를 도난당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지. 부산 서면에 촬영대회가 있어서 새벽에 버스를 타고 움직였더니 촬영이 끝난 후에는 지칠 대로 지쳤던 거라. 부산에서 만원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어느 순간 카메라 가방에 있던 카메라가 사라진 거야. 카메라는 말할 것도 없고 고생해서 찍은 필름도 없어져 정말 속이 쓰렸지. 이건 자랑 같은데 포항 시의원 중에 내가 인물을 찍은 사람은 모두 당선되었어. 그 소문을 듣고 시도 의원들이 내 사진관에 와서 졸면서 기다리기도 했어. 울릉도에서 찾아온 군의원도 있었고.

조 : 사진관으로 찾아온 사람도 많았겠습니다.

이 : 지금이야 휴대전화로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으니 사진관 갈 일이 별로 없지만 과거에 사진관 가려면 큰맘을 먹어야 했지. 환갑 사진을 찍을 때는 온 가족이 버스를 대절해 오기도 했어. 그렇게 사진관에 오면 맨 처음 가족 전체 사진을 찍고, 큰아들 가족, 작은아들 가족, 부부 사진, 개인 사진 순으로 찍는 거야. 그 사진이 영정 사진도 되는 거라. 돌 사진, 백일 사진, 약혼 사진은 물론 언약식 사진을 찍으러 오는 경우도 많았지. 그러고 보면 시대마다 계절마다 복장도 다양했어. 그래서 유행이 바뀔 때마다 서울 동대문, 남대문으로 옷을 구하러 다니기도 했어. 학교 졸업앨범도 많이 했지. 대개 증명사진을 찍을 때 한 번 찰칵 하면 다 찍었다고 하는데 나는 여러 포즈를 신경 쓰며 고개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주문하며 세밀하게 여러 번 찍고 가장 잘 나오는 것으로 인화했지. 그래서 학생들 앨범 촬영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 그래도 사진 잘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졌지. 한번은 누드 사진을 찍으러 온 아가씨가 있었어. 저녁 무렵에 퇴근하려는데 한 아가씨가 조심스럽게 들어오더니 누드 사진을 찍으러 왔다는 거야. 그때만 해도 누드 사진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던 때여서 나도 의아했지. 왜 누드 사진을 찍고 싶냐고 물으니 상체에 자신이 있어서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은데 누구한테 부탁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포항에서는 이도윤이 가장 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는 거야. 어떡하겠나, 사진을 찍어주었지.

조 : 선생님 사진을 살펴보면 ‘생업’이란 제목이 여러 개 보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 : ‘생업’은 단순히 직업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절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지. 이 사진은 내 사진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찍었는데 우체국 앞이야. 눈발이 날리는 어느 날 한 아낙네가 얇은 옷차림에 고무 대야를 이고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는 장면이지. 고무 대야에는 감자 몇 알이 담겨 있고. 아낙네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감자를 팔러 장으로 가는 것일까, 아니면 어린 자식들에게 저녁을 먹이러 가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사진이지. 이런 삶을 생업이라 보는 것이지.

 

다큐멘터리를 넘어 깊은 진실과 교감하려는 이도윤의 작가정신은 다음 글이 잘 설명해준다.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고달팠던 삶을 읽도록 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작가가 담아내려 했던 것은 그 순간의 어떤 진실만큼이나 그 진실이 담겨진 더 큰 그릇이라 할 수 있는 당대의 사회적 현실이었고, 그 현실을 직조하고 있는 우리네 삶의 진득한 기록이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진은 잊혀짐과 망각에 대한 저항, 기록인 것이며, 그러한 순간순간의 기록이 모여 역사를 이룬다. 거창하기만 한 거대 서사가 아닌 평범한 이들의 일상들이 쌓이고 쌓인 역사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작가의 사진은 이처럼 순간의 진실이 하나하나 모여 이루어진 우리네 평범한 이웃들의 씨줄 날줄로 엮어진 풍경이며 역사인 것이다. 아울러 그저 단순히 차가운 객관적인 다큐멘터리로서의 진실만이 아닌, 그 속에 담겨진 진실과 교감하려는 작가적 애정이고 태도이기에 더 큰 울림을 전한다.

- 민병직, ‘그리운 포항, 사람들’, 포항시립미술관, 2012, 8쪽.

 

조 : 지금도 찍고 싶은 사진이 있는지요.

이 : 특별히 찍고 싶은 사진이 있다기보다 사진전에 가면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을 느껴. 이건 이렇게 찍으면 안 되는데, 저건 어떤 앵글로 찍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이 생겨. 아프기 전에는 쉼 없이 계속 움직였지. 매일 아침 6시 전에 나가 오전 10시까지 촬영했어. 사진은 역광이 중요하니까. 지금도 사람들이 나를 보면 사진 촬영하느냐고 물으면서 사진 좀 가르쳐달라고 해. 내 처지가 이러니 어디 가서 어떻게 찍어라고 말해주는 게 전부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넘어오면서 사진을 더 많이 찍었지. 디지털이 아무리 편리하다고 해도 아날로그보다는 못해. 사진의 톤과 디테일에서 아직은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따라오지 못하지.

이도윤의 ‘생업’, 1978. 전국 영상의 적(跡) 금상
이도윤의 ‘생업’, 1978. 전국 영상의 적(跡) 금상

조 :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면 카메라 성능이 아무리 좋아져도 근본적으로 사진에 임하는 자세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 사진을 편안하게 찍으려고 해서는 안 돼. 근성이 있어야 해. 한 장면을 찍어도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야지. 이명동 선생 같은 열정과 프로 근성을 배워야 해. 요즘 사진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사진작가의 혼이 작품에 담겨 있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들어. 화가들이 왜 사진을 가볍게 여기겠어? 화가는 사력을 다해 그림을 그리잖아. 사진작가도 과연 그럴까? 한번 생각해볼 문제지. 그런 의미에서 흑백 사진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 그림도 살릴 수 없는 것을 흑백 사진은 살릴 수 있어. 사진을 배우는 사람들이 흑백 사진을 찍게 되면 사진 예술의 본질을 깊이 이해할 수 있거든. 내 사진 중에 ‘돼지몰이’, ‘생업’은 흑백 사진이 주는 최고치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지.

조 : 끝으로 사진계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지요.

이 : 사진은 나에게 삶 그 자체지. 매 순간 사진을 생각했고 매일 사진을 찍었어. 그러다가 목표가 생겼는데 사진을 사회와 접목해보자는 것이었어. 그리고 그 길을 향해 열심히 걸어갔지. 나는 이 모든 걸 내가 좋아서 했어. 그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요즘 사진전에 가보면 사진과 관련된 사람들만 오는데 이건 좀 아쉬워. 내가 개인전을 할 때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많이 왔지. 지역 유지들도 찾아와서 좋은 작품 만든다고 고생 많았다며 격려도 해주고 그랬어. 왜 사람들이 사진전에 별로 오지 않는지 사진계에서 고민하고 개선책을 찾아야 해.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여지는데, 내 사진과 필름을 어떻게 할까 고민이야. 포항시립미술관에 맡길지, 한국사진협회 포항지부에 맡길지. 여건이 되면 ‘포항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로 사진전을 해보고 싶군.

 

이도윤 작가
이도윤 작가

이도윤

 

1940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다. 1967년 포항에 정착하면서 사람들의 삶과 풍경을 사진에 담아왔다. 1973년 포항 맥심다방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2년 포항시립미술관에서 ‘그리운 포항, 사람들’이란 주제로 여섯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프랑스 국제사진전 우수상, 아시아태평양 사진전과 유네스코 사진전 우수상, 중화민국 사진전 3회 입선, 대한민국 미술대전 2회 입선, 대한민국 사진대전 입선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포항지부장, 영상동인회 전국 회장, 선린대학·포항대학 강사 등을 역임했다.

 

대담·정리 : 조혜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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