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도예가 박종일<br/>전통 망숭이 장작가마에서 구워진<br/>다기는 때깔이 맑고 은은<br/>오래 두고 보아도 편안하고 온유해<br/>이야기가 있는 작품 만들고파<br/>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br/>다해(茶海) 퇴수기가 그것
“옛 찻그릇의 복제가 아니라 옛 도공의 심리적 유산, 그리고 제 삶의 경험, 현대인들이 즐기는 차 문화의 의미와 시대적 사유까지도 담아내고자 합니다.”
경주 산내면에서 장작가마 서동요를 운영하는 도예가 박종일(60)은 40여 년째 도예작품을 빚으며, 현재 전통 망숭이로 박은 장작가마에서 찻그릇과 조형 작품들을 구워내고 있다.
그는 “엄선된 점토와 자연에서 채취한 건강한 재료의 유약을 사용하고, 망숭이 가마의 복사열을 이용하여 소나무 장작만으로 산소를 제거하는 환원번조과정으로 고온에서 오랜 시간 동안 구워내기 때문에 완성된 도자기의 색과 무늬가 깊고 아름다워 오래 두고 보아도 기품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작가마 서동요를 방문한 지난 11일에는 그의 40년 도예 인생을 되돌아보기 위한 전시회가 열리는 중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 전시와 함께 그의 작업실과 차실 등 야외에 설치된 작품들을 해발 500여 미터에 펼쳐진 자연과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또 갇힌 공간에서의 짧은 전시회와 달리 9월 한 달간을 기간으로 정하고 매주 화요일 오후에 전시장을 찾는 도자기애호가들과 함께 교류와 공감 기회를 갖는 이색적인 전시회를 기획했다. 그와 나눈 도자기와 도예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한다.
-도자기란 무엇인가.
△도자기는 1200℃ 이하에서 굽는 도기류 기물과 1250℃ 이상에서 굽는 자기류의 기물들을 합해서 만든 단어다. 도기류는 주로 발효식품이나 곡물 등을 담고 저장했던 옹기나 푸레독, 지붕의 마감재로 사용하는 기와, 중국 이싱에서 생산되는 자사호,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옛 토기 등을 일컫는 단어다. 자기는 고온으로 구워낸 청자, 분장회청사기, 백자, 근래에 생산되는 본차이나와 슈퍼세라믹 등을 말할 수 있다. 굽는 온도에 따라 점토, 제조공정도 조금씩 다르고 용도와 기능도 다르다.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철학이 담긴 문화적 유산이다.
-전통 망숭이 장작가마에 굽는 다기 작품이 인기가 많다. 왜 그런가.
△장작가마에서 구워진 다기들은 오랜 시간 동안 고온에서 담금질이 되어서 때깔이 맑고 은은하며 오래 보아도 늘 제자리에 있었던 듯이 편안함과 온유함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장시간 불과의 교감을 통하여 재료와 색이 자연의 상태로 다시 돌아갔기 때문이다. 또 장작가마에서 구워낸 다관은 내면에서의 대류 현상이 더욱 빠르기 때문에 찻잎 사이사이에서의 유체의 이동으로 차의 성품이 가지고 있는 기운과 맛을 모두 얻어내는 작품이다.
-흙과 유약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그동안 활동을 소개한다면.
△지역의 점토와 재료를 이용하여 그 지역의 특징적인 주제를 형상화하는 작업은 보통의 도예가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전라도에서는 전라도 옹기토로 옹기 작품을, 경상도에서는 산청토와 백고령토로 사발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대의 점토 생산 공장인 안강 동영산업에서 생산된 백토를 이용하여 생활자기와 절편 미학의 개념을 도입한 개념조형 작품들을 만든다. 중국의 연변대학에서는 당지의 점토를 이용하여 우리 민족의 형상과 만주와 간도로의 초기 이민 시절을 기억할 수 있는 풍물들을 제작하였다. 또 중국의 최대 도자기 산지인 경덕진의 도자대학에서는 그 지역의 고백토를 이용하여 산수 자연의 풍광을 입체산수문 찻사발과 항아리 등에 형상화하였으며 해면이라는 소재를 니장과 조합하여 조형 작품을 완성하였다.
-즐겨 하는 작품들의 제작과정과 작품이 주는 의미를 소개한다면.
△근래에는 다시 안강의 백토와 진사유약을 이용하여 무궁화를 주제로 입체적인 달항아리와 조형성이 돋보이는 나만의 찻사발 등을 빚고 있다. 지역의 점토와 유약의 재료는 다양하다. 작가는 이러한 다양한 재료 중에서 자기의 의도와 형상에 맞는 점토와 유약으로 뼈와 근육을 만들고 그에 어울리는 옷을 입히기 위해 많은 실험과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 명작을 탄생시킨다.
-다기의 형태 등 자신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몇 년 전에 빚었던 다기류의 작품에는 용, 나비, 새, 꽃, 물고기 등 자연의 이미지를 소재로 만들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형상들은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단순한 도자기나 다관이 아닌 하나쯤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놀고 싶어 할만한 작품들이다. 예를 들면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다해(茶海) 퇴수기가 그렇다. 요즘 저는 당초문을 입체화하면서 다관의 내·외면에 볼륨을 주고 찻물의 대류를 복사시켜 차의 기운을 최대한 우려낼 수 있도록 고안한 다관을 제작한다. 중국 자사호의 위쪽에 더운물을 부어 순환을 극대화하는 원리보다 더 빠른 대류 현상을 원하는 것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18번의 국내외 개인전과 200여회 이상의 각종 국내외 전시회를 하셨다.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다면.
△커다란 발을 꽃의 형태로 조형한 첫 번째 전시회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초보자가 아무것도 모르고 만든 작품이었지만 반향은 아주 좋았고 지금까지 이 길을 걷게 되었던 시발점이 되었다. 물론 무유 찻그릇을 처음 전시했던 2004년 ‘기다여행(器茶旅行)·여행자의 편지’는 오늘날 서동요의 기반이 되고 장작가마와 전통적인 작업을 지속하게 만든 원동력이 된 전시회라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보통 첫 번째 전시회의 주제를 끝까지 지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데 비하여 저는 다양한 소재를 주제로 삼았고 지금도 새로운 소재와 재료를 찾아 작업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가 있다면.
△아름다운 미래의 이상향을 담아낸, 역사 깊은 우리의 도자 문화는 다른 나라와 달리 제작 의도, 장인들의 정신은 물론 도자기의 색감, 여백 등 고유의 DNA가 존재한다. 이러한 정신적 문화와 정서를 갖춘 각 분야 최고의 전문 장인들을 모아 분업화 작업으로 완성된 우리 문화와 특징이 담긴 우리만의 조형성과 상상력을 담아낸 생활 용기와 작품을 세계 시장에 선보이고자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