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수미 현대미술작가<br/>… 늘 봐왔던 일상 속 소품이 다른 시각으로 구현될 때 얼마나 큰 에너지로 생경하게 다가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br/>연작 ‘때창’은 이와 같은 맥락으로 현재의 긍정적 삶에 대한 태도를 이야기한다.…
“삶이 곧 행복이란 걸 많은 분과 함께 공감하고 싶었다고 할까요.”
경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수미(51) 작가가 최근 즐겨 작업하는 작품의 소재는 때수건이다. 오랫동안 한국 고유의 매체인 한지를 이용한 오브제 작업을 통해 자유로운 선율과 응축된 에너지를 표현해오던 작가는, 올해 ‘경주미술인상’ 수상전시에서 때수건으로 제작한 작품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인의 생활 정서 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때수건은 인생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상징적 의미와 화려한 색감의 일상 속 오브제로써 독특한 존재 가치를 부여한다. 때수건의 거친 표면, 올이 풀린 실오라기, 시그니처인 검은 선을 활용해 박음질과 손바느질로 콜라주 작업한 사람 표정, 입체적 추상의 설치작품과 sewing drawing 으로 명명한 바늘땀으로 그린 작품들을 제작했다.
지난 7일 경주시 소티마을에 있는 박 작가와 만나 나눈 그의 삶과 작품 이야기를 정리한다.
-‘때수건’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한지 오브제 작업을 하느라고 붓과 물감보다 풀과 가위를 사용하는 시간이 많고 견고한 화면을 오랫동안 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색과 드로잉에 대한 갈증이 많았던 것 같다. 어느 장날에 시장을 돌아보다 리어카에 매달린 때수건이 그늘 하나 없는 화려한 색으로 펄럭이는 모습을 보고 그 찬란함에 가슴이 뛰었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천이라고 생각했다. 2021 경주미술인상 수상전시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됐다. 그 과정은 무척 설레고 신나는 작업이었다.
-작품 제작과정과 작품이 주는 의미를 소개한다면.
△때수건은 일상의 노곤함을 위로하는 상징성과 보편성이 공존하는 매체로써 색과 마티에르, 섬유의 조직 등이 현재의 우리를 표현하기에 꽤 매력 있는 작업재료다. 천을 찢어 마치 물감이 물에 풀어져 종이 결을 따라 흐르는 느낌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얇은 조각을 겹쳐 색을 중화시키기도 한다. 얇은 평면의 천을 좀 더 견고하고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일일이 주름을 잡아 박음질하고 그것을 또 이어붙여 큰 설치작품으로 제작한다. 늘 봐왔던 일상 속 소품이 다른 시각으로 구현될 때 얼마나 큰 에너지로 생경하게 다가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살면서 오직 한 가지만을 추구하는 것은 ‘절대 고독한 일’이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고독한 일’이 아니다. 우선 ‘오직 한 가지’가 무엇인지 평생 찾는 과정이 예술이다. 그래서 외로우면서도 분주하고 늘 깨어있어야 발견할 수 있으니 절대 고독으로는 작업을 이어갈 수 없다. 사유에서 대화에서 여행에서 무료함에서 일상에서 어디서든 작업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안테나로 구성된 유기체로서 삶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을 때 작업으로 표현해 오랜 시간을 집중할 수 있는 바쁘고 행복한 사람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작업을 계속할수록 자신을 객관화하는 연습이 되어서 자아에 매몰되지 않고 또 적확함을 찾아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욕심에서 벗어나 좀 더 자연스러운 인간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은 결코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결국 나에게 작업은 현실을 평정하게 바라보기 위한 삶의 루틴이다.
-‘때창’ 연작을 발표하는 이유는.
△흔히 다짐하는 ‘행복을 추구하는 삶’처럼 삶과 행복이 독립된 개념이라면 삶은 늘 행복을 따라잡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고달픈 일상의 연속일 뿐 행복은 늘 멀기만 하다. 이는 행복을 목적지로 둔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경주에서 출토된 신라토우를 보며 당시의 일상을 꾸밈없이 즐겼던 그들의 삶의 태도에 깊이 공감하여 3년 전 ‘삶을 추다’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때창’은 이와 같은 맥락으로 현재의 긍정적 삶에 대한 태도를 이야기한다. 때수건 작업은 이제 시작 단계이고 여러 표현방법을 연구 중이다. 또 이 재료가 어디까지 표현될 수 있을까 기대되기도 한다. 선물처럼 나에게 다가온 때수건으로 긍정적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표현하고 싶다.
- 올해 경주미술인상을 수상했는데 그림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랫동안 함께 작업하며 지내던 동료작가들이 주는 상이기에 가장 고맙고 가치 있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작가는 늘 불안하고 지치기 마련이다. 잘 가고 있는지 맞는 길인지 항상 혼자 고민하고 방황하기 일쑤인데 이 상은 그대로 걸어가는 것을 응원한다는 위로처럼 느껴져 뭉클하기까지 했다. 우리끼리 주고받는 상이라지만 2021 경주미술인상 수상은 분명 내 작품활동에 큰 변곡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가 있다면.
△언제나 좋은 작품으로 좋은 전시를 만나는 것이다. 하나의 전시가 다른 기회로 확장되고 다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8월 한 달 동안 경주 황리단길에 위치한 문화공간 황남정미소에서 때창 전시를 할 예정이고 그 후 영천과 대구 등지에서 그룹전이 계획되어 있다. 앞으로 해외전시와 아트페어 등 다양한 관람객을 만나 소통할 기회도 만들어야 하고 머지않은 날 작업공간과 소장공간, 주거공간이 분리된 참한 작업실에서 마음껏 어질러놓고 작업하는 꿈도 가져본다. 나와 주위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고 싶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