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운생동의 미학_깨달음의 순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펴낸 한국화가 권정찬<br/>서양화서 수묵화·채색화·오브제 등 다양한 장르 시도한 ‘사유의 시간’ 담아 <br/>대중에 기생하지 않고 사물을 통찰하고 치유하는 예술 추구하고 싶어<br/>국제예술인협회 통한 K-art의 격상 높이는 데 최선 다하는 것도 내 소임
한국화가 권정찬(전 경북도립대학 교수·문경시)은 대구·경북은 물론 한국 화단에서도 손꼽히는 걸출한 예술인 중 한 명이다.
무위자연의 도가(道家) 사상을 연구하기도 한 그는 활달하고 호방한 기운의 선화적 수묵 세계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는다. 특히 색과 먹이 조화된 무겁고 맑은 채색화 작품은 국내는 물론 해외 미술관이나 국가원수 등에 소장되는 등 독창적 예술 정신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서양화로 시작해 수묵화, 채색화, 오브제 등 다양한 장르를 개척해 화단의 인정을 받아온 그는 기고를 통해 시대비평과 미술 이론은 물론 시와 풍수, 기감(氣感) 등 문학과 기공 분야에서도 탁월한 식견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엔 작가의 예술관과 경험을 펼쳐낸 책 ‘기운생동의 미학-깨달음의 순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조윤커뮤니케이션)를 펴내 눈길을 끈다. 지난 10일 권 작가를 만났다.
-‘기운생동의 미학, 깨달음의 순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을 소개해 달라.
△그동안 틈틈이 메모를 하거나 칼럼을 통해 알려진 글, 아침, 저녁으로 쓴 일기, 하루 중 걷는 시간을 통한 사유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 글들을 모아본 것이다. 특히 화가로서의 예술관과 화단의 변천 속에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경험들을 담았다. 우선 무위자연에 빠져 도가 사상을 접하고 이를 통한 깨달음과 통찰의 이야기, 화가로서 지나온 여정과 철학, 미술계의 문제와 화가의 자존심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또 현대사회의 인연을 통한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인성과 기운의 나쁨과 좋음, 시대적 혼돈의 세태와 운명의 진실, 보완과 치유 등의 내용도 간단간단하게 다루었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중국의 역사 속 화가와 저를 혼합한 SF 단편소설을 실었다.
-“자연의 흐름을 보고, 기를 읽을 줄 알고, 깨달음에 이르러야만 통찰과 치유를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불교의 향기가 있는 도가의 집안에 태어났다. 사찰과 산을 오르내리며 선방 생활도 해보고 산에서 공부도 했다. 그리고 나름 무언가를 얻고 받았다. 혹자들은 도(道)라고 하고, 기(氣)라고도 하더라. 그래서 스님으로부터 화두를 받아 답을 제시하기도 하고 문자나 문장을 계시받기도 했다. 도인과 기공인, 풍수가들을 스승으로 모신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답을 얻었다. 하늘과 땅, 인간의 기운을 읽는 법을 열어가는 과정이다. 소위 박사나 전문교수들은 기를 부정하거나 미신 내지는 과학의 아류로 보지만 그렇지 않다. 기는 우주를 형성하는 도이고 존재이다. 그것으로 인간과 생명체는 살아간다. 좋으면 잘되거나 건강하고 모자라면 삶이 고달프고 건강도 무너진다. 그래서 방에 걸어 둔 그림 한 점도, 주거지나 조상 터도 중요한 것들이다. 서양에서도 동양의 4차원 세계를 연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기의 경지에 오르면 눈과 마음으로 기의 상태를 들여다볼 수 있다. 인간관계나 마음도 들여다볼 수가 있다. 그리고 치유할 수가 있다. 우려하는 것은 과학으로도 못 푸는 세계, 그러한 능력의 소유자가 과연 내 주위에 있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작가로서의 여정과 철학을 돌아본다면.
△대학 시절 전공을 서양화에서 동양화로 바꿀 때는 주위에서 꾸지람도 많이 했다. 동양화도 인물에서 수묵으로 그리고 채색으로 하고 싶은 대로 바뀌었다. 청년 시절에는 하루 3∼4시간만 자고 작품에 매달렸다. 수묵 운동의 중심에서 중앙의 정예작가들과 같이했고, 채색관 관련해 ‘일본화’라는 욕을 먹기도 했는데 선구자적 행동은 확실히 했다고 자부한다. 지금은 혼합재료와 다시 유화를 만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 우물을 판 작가들과 비교하면서 나무라는 사람들도 있다. 잘 팔리는 작가의 시절도 아니지만 대중에 기생하는 그림을 다시 그리기도 싫다. 마음대로 낙서 같은(?) 표현을 하고 있어도 찾아주는 분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기간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가 주최한 ‘2008 동아시아 예술시각전’의 초대작품 선정 등 수많은 국내외 초대전과 개인전을 거치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아트페어를 제외하고 국내외적으로 50여 회나 주요화랑과 미술관초대를 받아본 작가는 드물 것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수묵화도 채색화도 인물화도 오브제도 마음에 드는 작품은 아직 만나지를 못했다. 대중을 인식하고 팔린 작품에 시선이 가고, 칭찬에 마음이 약한 것이 화가일까? 그런 의미에서 나만을 위한 그림을 그리겠다고 다짐을 한 이후의 작업인 지금의 화풍에 친해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마침 아틀리에 벽면에 걸려 있는 ‘도기상(道其常)’이라는 작품에 시선이 간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소개해 달라.
△기운을 그린다. 존재의 흐름이나 자연의 순리와 맥을 짚어본다. 찰나를 표현한다. 자연을 보고 마음에 담으면 즉시 시행한다. 그림 속의 문장이나 시도 즉흥적으로 표현을 한다. 찰나의 마음이 가장 때 묻지 않은 진솔함을 가지고 있다. 절륜(絶倫·매우 두드러지게 뛰어남)의 무예가가 무아의 경지에서 초식을 다루듯, 학이 춤을 추고 맹수가 포효하듯 물고기가 이리저리 노니며 유영을 하듯 그렇게 나아가려고 한다. ‘동도서기(東道西器·동양의 도와 서양의 기술)를 존중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위자연과 벗하며 천지인의 기운을 읽고 담으니 그 공부가 참 행복하다. 하나씩 내려놓고 벗어 던지면 세상을 더 맑고 밝게 통찰하고 치유하는 예술에 다가가지 않을까. 착한 행동에는 항상 운명을 좋게 바꿀 유전자가 있다. 그러함에 보태는 예술을 하고 싶다. 사물을 통찰하고 치유하는 예술을 추구하고 싶다. 그리고 국제예술인협회를 통한 K-art의 격상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