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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에 관하여

등록일 2021-06-17 20:48 게재일 2021-06-1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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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름 기획취재부
이바름 기획취재부

어린아이들과 마주하면 필자는 항상 몸을 낮추고 눈높이를 맞춘다. 그리고 먼저 웃는다. 그러면 열 중 여덟은 따라서 배시시 웃는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좋다. 나도 아이도 서로 느끼고 있다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물론 열에 하나는 정색, 하나는 지구가 떠날 듯 엄마를 찾긴 하지만 말이다.

김태성 해병대 사령관과 함께 병영생활을 했던 많은 이들은 그를 참 군인이자 장병들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한 부대의 장이었음에도 그는 언제나 부대원들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존경할 수 있는 군인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김 사령관이 올해 4월 현재의 위치에 올랐을 때 자기 일처럼 뿌듯해했던 많은 해병대 간부들과 전역자들을 봤다. 그의 눈높이는 적어도 장병들과 함께 했을 것이다.

지난 14일 해병대 제1사단에서 발생한 부실 급식 논란과 관련해 해병대 사령부는 15일 CMC(해병대사령관)를 언급하며 현장 급양담당과 감독관의 역할 부족을 질타했다. 배식의 양이 부족한 상황을 인지했으면 추가 부식 등의 조치를 통해 장병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었지 않느냐는 말이다. 상황의 엄중함도 모르고 있다는 강한 어조를 섞어가면서까지 현장 관리자들의 책임을 강조했다.

SNS에 글을 올린 작성자가 “다들 라면을 많이 먹는다”고 한 이유는 도시락을 담는 과정에서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배식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짬밥’이기 때문이다. 글에 나온 것처럼 닭가슴살 한 조각을 집으니 치킨샐러드가 아닌 그냥 샐러드가 돼 버린 부실한 식단이 사건의 본질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군대 급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많은 장병들이 PX로 달려가는 이유에는 한해 40조원이 넘는 국방비가 이리저리 새고 군 장병들에게 전달되는 결과물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과 마주닿아있다. 전시 상황에서도 음식의 질을 따질 거냐는 뻔한 반론에는 21세기에도 평생 전투식량만 먹으라고 응수하고 싶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믿는 편이다. 과거에 좋은 사람이었다고 해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는 겪어봐야 아는 게 사실이다. 해병대라는 국가전략기동부대의 최고자리까지 오른 그가 여느 사령관들처럼 변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도 믿는다. 많은 해병대 장병들의 롤 모델이었던 시절처럼 그가 대원들과 같은 눈높이에 서서 바라봐주길 바라는 목소리들이 많다. 이번처럼 남 탓을 먼저 하는 김태성 부대장을 기억하는 부대원은 많지 않다.

/bareum90@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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