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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흰빛들

등록일 2021-06-15 19:52 게재일 2021-06-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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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 균

뒤뜰 매화나무에

어린 하늘이 내려와 배냇짓하며

잘 놀다 간 며칠 뒤

 

끝이 뾰족한 둥근 잎보다 먼저

꽃이 피어서

몸과 마음이 어긋나는 세상의

길 위로 날아가는

흰빛들

 

아픈 생의 비밀을 안고 망명하는

망명하다가 끝내 되돌아와

제자리를 지키는

저 흰빛의

저 간절한 향기 속에는

 

죄 짓고 살아온 날들의 차디찬 바람과

지금 막 사랑을 배우는 여자의

덧니 반짝이는 웃음소리

 

한밤중에는 읽은 책들의

고요한 메아리가

여울물 줄기처럼 찰랑대며 흘러와

흘러와

새끼를 낳듯 몇 알

풋열매들을

드넓은 공중의 빈가지에 걸어두는 것을

점자처럼 더듬어

읽는다

엄동을 견딘 대지에 제일 먼저 피어나는 봄의 전령사는 매화다. 시인은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순간을 생명감 넘치는 언어로 묘사하고 있다. 매화꽃의 흰빛은 설레임으로 가만히 빛을 내며 소박한 아름다움과 희망의 빛을 띠고 있다고 예찬하고 있다. 매화꽃의 그윽한 향기는 앞으로 펼쳐질 희로애락을 담담하게 예견해주는 전령이라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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