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구
추령 너머 가을은 이미 깊을 대로
깊었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벌써 하얗게
바랬습니다
새들은 숨을 곳을 찾고 땀이 마른 생명들은 모두
누웠습니다
떨리는 음정으로 노래하던 억새도 목이
쉬었습니다
가을걷이도 끝난 뒤에 낫을 갈아서
해가 지는 허공에 걸어두었습니다
내 안에 서늘한 어둠이 들고
빛나는 낫 한 자루 보입니다
깊이 우러나는 서정시를 쓰다 오래 전 우리 곁을 떠난 김정구 시인의 그윽한 눈빛을 본다. 가을을 맞아 결실에 이르는 자연을 바라보며 생의 마지막을 예감하며 쓴 이 시는 애잔함이 가득 묻어난다. 가을걷이 후 낫을 갈아 해가 지는 허공에 걸어두듯이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서늘한 어둠이 찾아든다는 시인의 쓸쓸한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