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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질’과 ‘선동’ 사이

등록일 2020-09-06 18:45 게재일 2020-09-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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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논설위원

조선 초 황희(黃喜) 정승이 길을 가다가 검은 소와 흰 소를 몰고 밭을 매고 있는 농부의 모습을 보았다. 문득 궁금증이 일어서 “검은 소와 흰 소 중 누가 더 일을 잘 합니까?”하고 물었다. 농부는 못 들은 체하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황희가 또다시 묻자, 농부는 소를 쉬게 해놓고 귓속말로 “검은 소가 일을 더 잘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굳이 귓속말로 하는 까닭을 물으니 농부는 “사람도 짐승도 자기 욕을 하면 기분이 나쁜 법입니다”라고 말했다.

의사들이 정부의 일방적인 의료정책 추진에 반발해 벌어진 의정(醫政)갈등이 정치권의 중재로 수습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갈등의 한복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SNS에 올린 간호사 격려 글에 대한 논란이 꼬리를 길게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의 속 좁은 ‘편 가르기’ 언어라는 비난이 빗발치자, 민주당 의원들이 번갈아 나서서 옹색한 반박을 펼쳤다. 다만 그 언급들의 논리가 하도 허술해서 막 내지르는 ‘충성 발언’ 정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문 대통령 글은 아무리 다시 읽어도 ‘순수한 격려’로 읽힐 여지가 없다. ‘의사들이 떠난 현장을 묵묵히 지키는’부터,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 ‘(폭염 당시 쓰러진 의료진)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대목에 이르기까지 이게 정말 한 나라의 대통령이 쓴 글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야릇하다. 많은 국민이 ‘참모’들의 편협한 정보가 또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고 있구나 하고 안타까이 생각했다.

그런데 수많은 비판 댓글이 달리는 등 파장이 깊어지자,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사달이 난 글을 작성한 사람이 대통령이 아니라는 변명이 등장한 것이다. 어떻게든 대통령을 보호하려고 둘러댄 말인데, 그 말들이 이번엔 대통령을 그야말로 바보로 만들어 해명도 변명도 못 하도록 궁지에 몰아넣고 만 것이다. 그동안 번번이 이슈의 중심이 됐던 SNS 글들의 저자가 따로 있다는 얘기가 돼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직분의 엄중함과 과중한 업무를 생각한다면, 대통령의 SNS가 직접 작성됐느냐, 않았느냐는 중요한 대목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한 변명 또한 대통령을 도와주는 말이 못된다. 고 의원은 한 방송에 나와서 대통령 메시지를 놓고 “누구의 것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답하기가 참 어려운 부분”이라며 “발신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고민정이 말한 대로 보아도 문 대통령의 SNS 글은 ‘갈라치기’ 메시지가 역력하다. 만약에 대통령의 메시지가 확증편향에 빠진 팬덤정치를 의식한, ‘선동’을 목표로 하는 ‘이간질’의 발로였다면 이는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턱이 없는 들판의 소들에게조차 듣기 싫은 비교와 비난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고사(古事)의 교훈을 다시 떠올린다. 국민이 대통령에게서 듣고자 하는 말은, 모든 국민을 아우르는 진정 ‘대통령다운 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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