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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하다

등록일 2020-06-16 20:08 게재일 2020-06-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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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욱 시인
김현욱시인

“그렇게 다양한 글감을 어디서 구해요?”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크게 세 가지 경로를 통해서 얻는다. 첫 번째는 신문이나 잡지, 두 번째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세 번째는 생활 속 관찰이다.

가장 유용한 것은 신문이나 잡지다. 매일 중앙지와 지방지를 합해서 4~5종을 훑어본다. 정치나 스포츠는 건너뛰고 사회, 국제, 과학, 문화, 칼럼을 정독한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요건 글이 되겠다, 안되겠다, 금방 감이 온다. 오늘 읽은 기사 중에 ‘아무 영상이나 보고 욕 배운 AI 어린이’는 동화로 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스크랩해두었다. 서너 달 열심히 신문을 보면 글감이 제법 모인다. 시, 동시, 동화 순으로 분류해둔 것도 제법 양이 많다. 그럼에도 엉덩이가 가볍다보니 진득하게 앉아서 초고를 못 쓰고 자꾸만 묵혀둔다. 생각지 못한 청탁이 와서 급할 때면 글감 폴더를 열어본다. 내겐 보물 상자 같은 것이다.

월간 ‘좋은 생각’과 ‘샘터’, ‘작은 책’ 같은 잡지도 즐겨 읽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서 좋다. 잡지를 읽고 밑줄도 치고 블로그에도 가려 올린다. ‘좋은 생각’ 6월호에서 ‘달빛 스쾃’이란 글이 뭉클했다. 화물차는 모는 아버지가 자신의 처지에 맞게 화물차 좁은 칸에서 스쾃을 하는 내용인데 생각할수록 코끝이 찡했다. 춤을 소재로 한 영화의 주제가 ‘What a feeling!’도 처음으로 들어봤다. 단란했던 가정에 병마가 들이닥쳐 한순간에 남편을 잃었지만, 역경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그러나 수기’도 시큰한 감동을 주었다. ‘아들은 예순 셋, 어머니는 여든여덟’에서 용돈보다는 자주 얼굴 보고 맛있는 것 많이 먹기를 실천하는 아들의 이야기가 나를 돌아보게 했다. 특히, “우리 모자의 점심이 얼마나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삼 년은 더 지속되면 좋겠다.”는 마지막 문장은 기억에 오래 남았다.

월간 ‘작은 책’은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주로 담긴 책인데, 이번 달에 창간 300호 특별호가 나왔다. 1995년 1호를 창간할 때 “노동자가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고 이오덕 선생의 말씀을 잣대로 삼았다고 한다. 6월호에서 가장 좋았던 글은 30년차 항공사 객실 승무원 김수련 씨의 ‘사름하다’란 글이다. ‘항공사 객실 승무원 30년차’란 말의 무게를 나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다.

“동생과 함께 너른 논을 다 채우면서 느꼈던 감동, 함께해서 이뤄 냈다는 성취감 같은 거. 오늘같이 힘든 비행이 끝날 때마다 함께 일한 동료들을 보면 그때의 감동이 문득 살아날 때가 많아요. 그때 난 동생과 모를 심고 ‘우리의 벼’가 자라는 동안, 내가 온전히 내 일의 주인이 되는 경험 같은 걸 했나 봐요. 저는 그런 순간들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혼자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함께 해내고 그런 감동을 순간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사름’을 하고나면 ‘모’는 더이상 모로 불리지 않고 ‘벼’가 된단다. 인생도 사랑도 ‘사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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