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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비론의 오류

등록일 2020-02-06 19:17 게재일 2020-02-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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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br /><br />시조시인<br /><br />
김병래시조시인

서로 충돌하는 두 의견을 모두 틀렸다고 하는 이론을 양비론(兩非論)이라 하고, 그 반대말은 양시론(兩是論)이다. 상당한 경우 대립하는 주장들이 나름의 근거와 타당성을 가지고 있고 복합적인 요소들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또 한편, 대부분의 논쟁이나 토론에서 대립하는 양측의 주장은 모두 한계나 모순, 단점, 불합리한 면을 가지고 있다. 만약 한쪽 주장에만 모순이나 단점, 불합리성, 한계가 있고 다른 쪽 주장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면 애초에 문제가 없는 주장이 당연히 정론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니 논란이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논쟁의 소지가 있다는 것은 양시론이나 양비론이 나올 여지도 있는 것이다.

얼핏 보면 양비론이나 양시론이야말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중도(中道)인 것처럼 보인다. 불가의 팔정도(八正道)가 그러하듯 중도란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중간이 아니라 엄정한 정도(正道)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양비론은 사태의 본질에 대한 천착과 성찰의 부족이거나, 쟁점을 흐리고 물타기 하려는 불순한 의도일 때가 많다. 아니면 매사에 냉소적인 태도를 가졌거나 세상사의 시비나 논쟁을 초월해 홀로 고고한 척 하는 사람들이 자기우월감의 표출 수단으로 양비론을 펴기도 한다.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수평계(水平計)는 어느 한 쪽으로 기울이면 유리관 속의 물방울은 반대쪽으로 이동한다. 수평계의 물방울이 가운데를 가리킨다는 것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분명히 기울어졌는데도 물방울이 가운데 있다면 그 수평계는 고장이 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물위의 배가 한 쪽으로 기울면 중심축은 반대쪽으로 가기 마련이다. 이때 배에 실은 물건이나 사람들이 그 기울어진 쪽으로 몰리게 되면 배는 전복하고 만다. 전복을 막으려면 오히려 반대쪽으로 이동해서 무게중심을 바로 잡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다.

올바른 지성(知性)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회현상에 대해 수평계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사회가 한쪽으로 기울면 금방 알아채는 직감과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라야 지성인이라 할 수 있다. 요트를 타는 사람이 배가 왼쪽으로 기울면 반사적으로 몸을 오른쪽으로 이동해 중심을 잡는 것처럼, 양식과 정의감이 있는 사람들은 사회가 한 쪽으로 기울면 반발과 저항의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지금의 정권은 지나치게 좌경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물론 언론과 사법부, 교육계, 노동계, 문화계 전반을 걸쳐 좌파성향의 코드 인사들이 장악하여 전복의 위험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판국에도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논객들 중에는 점잖게 양비론을 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시국이 분명 심하게 좌측으로 기울었는데도 위기의식을 못 느낀다면 고장 난 수평계처럼 상황판단 능력을 상실한 것이고,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거라면 이권이나 보신을 위해서 현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려는 불순한 저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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