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경자년, 쥐의 해이다. 작년엔 ‘황금 돼지’띠라며 난리였는데, 올해는 흰 쥐띠라고 곳곳에서 ‘화이트’ 마케팅이 한창이다.
하얀색의 크림치즈볼이 통째로 들어간 ‘폴인크림치즈징거버거’(KFC), ‘해피 치즈 화이트 모카’(스타벅스커피코리아), 하얀 크림치즈 아이스크림인 ‘우리끼리’(배스킨라빈스) 출시 등 흰색 잔치 한 바탕이다. 이는 경자년의 ‘경(庚)’이 십간(十干: 甲乙丙丁戊己庚申壬癸) 중 7번째로, 음양오행설에 따라 흰색을 상징하게 된 것과 관련이 있다.
흰 쥐가 모두 ‘먹거리’와 관련된 것은 재미난 현상이다. 사실 ‘쥐띠는 평생 먹을 걱정 없는 띠’란 말이 있다. 천지창조 신화에는, 미륵이 태어나 물/불의 근원을 모를 때, 쥐가 이를 가르쳐 주었고 그 대가로 세상의 뒤주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전하는데, 이와 관련 있어 그런지는 모를 일이다.
쥐는 사실 먹거리와의 관련성 외에도 우리의 고전 속에서 다양하게 등장한다. 사람으로 둔갑해 주인 행세를 하거나 인간사의 부조리를 비판하는가 하면(‘서동지전’), 달리기 시합 중 소 등에 타고 가다 결승점에 와서야 소등에서 뛰어내려 1등을 했다는 이야기들이 그 대표적이다. 문화권에 따라서는 밤을 상징하기도 하고(인도), 파멸·죽음을 상징하기도 했던(그리스) 쥐,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는 재미, 재치, 얌체의 동물이자 풍요, 다산, 번영의 동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문학 속의 이러한 쥐는, 사실 알고 보면 모성애가 매우 강한 동물이다. 어미 쥐는 새끼를 낳으면 열심히 핥아 주는 습성이 있다. 열 마리의 새끼 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어미 쥐와 함께, 다른 그룹은 어미 쥐로부터 떼어 놓았더니, 전자의 그룹은 모두 성장했고 성장 호르몬 수치 또한 높았는데, 후자의 그룹은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어미 쥐의 혀처럼 생긴 붓으로 붓질도 해 보고, 성장 호르몬을 주입해 보았어도 별 효력이 없었다.
이처럼 어미 쥐의 사랑은 경탄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때론 이 사랑이 지나쳐 자식을 죽일 때도 있다. 얼마 전 학회 일로 신년교례회에 참석했더니, 마침 원로 교수 한 분이, 쥐의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용인즉슨, 쥐가 모성애가 강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새끼 쥐가 몸에 상처가 나 피가 나면 그것이 애처로워 어미 쥐는 계속 핥다가 결국에는 상처가 아물 틈이 없어 마침내 자식을 죽음으로 내모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는 것이었다.
내 편만을 극히 감싸고돌고, 네 편은 백안시하는 게 다반사가 된 세상이다. 하지만 자기 자식만 귀한 줄 알고, 내 편만 감싸고 편의를 봐주고, 상대편은 괄시, 무시, 배척하곤 하다가 결국엔 서로 생채기만 남기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그렇게 핥아대다 죽어버리면 아무 소용없는 것을. 바야흐로 올 경자년에는 상업적인 ‘화이트 잔치’도 좋고, 풍요와 다산, 쥐의 재치를 꿈꾸어 보는 것도 좋지만, 지나친 ‘쥐의 사랑’이 결국, 주변의 소중한 이들을 죽이고 고스란히 나의 ‘상처’로 남게 된다는 사실 또한 한번쯤 되새겨 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