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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虛)와 실(實)

등록일 2019-08-06 19:47 게재일 2019-08-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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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

오래 전, 구비문학 채록을 위해 읍면 단위의 시골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곳에서 귀한 손님 왔다며, 수박, 옥수수 등 온갖 음식들을 한 상 가득 차려 내던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푸짐한 시골 인심에 다들 즐거워하던 바로 그때, 갑자기 꼬꼬댁 꼬꼬 하면서 온 동네가 다 떠나갈 듯 요란스러운 닭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 닭장으로 가 보니 세상에 암탉이 작은 초란 하나를 낳고서 날개 죽지까지 푸덕거리며 어찌나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던지. 큰 달걀을 여러 번 낳은 닭들은 오히려 우는 동 마는 동 하는데, 알 하나 낳았다고 저 난리치는 것 좀 보라던 할머니 말씀이, 당시 공부하던 우리들에게 산 교훈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옛말에, ‘내허외식(內虛外飾)’이라는 말이 있다. 속이 비었으니 겉이라도 화려하게 꾸미려 한다는 뜻으로 허언장담하거나 허장성세하는 사람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사실 빈 수레는 요란한 법이다. 속이 꽉 찬 수레는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육중하면서도 둔탁하다. 그 둔탁함에는 뭔가 모를 무게감이 있다. 반면, 속 빈 수레의 바퀴 소리는 덜컹덜컹 어찌나 가볍고 요란한지 모른다. 그 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그것도 모르고, 빈 수레를 끄는 사람들은 자기 수레가 최고라고 떠들어댄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논어』 <위정>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곧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자기가 최고인 양, 소위 ‘척’ 하는 빈 수레가 너무도 많다. 대충 수박 겉핥기로 스캔한 지식을 자신의 것인 양 자신감으로 무장하여 떠들어대는 강사·교수들, 스스로도 잘 모르기에 투자해서 손해 보지 않으려 하면서 남들에게는 대단한 정보인양 얘기하며 투자를 강요하는 상인·기업가들, 서민들의 생활은 경험도 안했으면서 마치 잘 아는 양, 선거철마다 떠들며 민심을 얻으려는 정치인들 등. 이들 빈 수레들이 내는 소리로 인해 귀가 아플 정도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빈 수레들은 자신의 빈 것(虛)을 포장하는 데에 온갖 열정을 쏟아 붓는다. 빈 수레를 가득 채울 노력 대신에 어떻게 하면 그 빈 수레의 겉을 페인트칠 해 황금 수레로 포장할까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매달 납부해야 할 카드 값, 할부금, 빚 등으로 등골이 휘어지는데도 줄곧 번쩍거리는 명품백과 옷, 보석들로 치장하고 다녀야 직성이 풀리고, 사회적 지위가 이 정도이니 좋은 차는 몰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며, 학군 좋은 곳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아야 그나마 격이 높아진다고 생각하기에 어떻게든 그러한 곳에 살려고 아등바등한다. 그래야 남들이 무시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스스로 마치 ‘황금 수레’가 된 양 착각을 한다.

옷이 아무리 명품이면 무엇하랴. 그 옷을 입은 사람이 명품이어야 하는 것을. 인생사가 그렇다. 속이 꽉 찬 사람은 절대 자신을 과대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러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준다. 설사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한들, 크게 개의치 않는다. 누가 뭐래도 내면이 실하기에 스스로가 떳떳하며, 그 떳떳함이 남을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허한 사람은 그 허함을 무엇인가로 끊임없이 채우려 한다.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 허해지기에, 그 허함의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는 사람도 있다.

인생은 참으로 짧다. 이 짧은 한 평생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요, 몫이겠지만, 이제부터라도 虛를 감추는 데 아낌없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보다는 내면의 實을 가다듬는 데 보다 큰 열정을 쏟아 부어 보면 어떨까? 황금 칠을 한 수레는, 시간이 지나면 벗겨지기 마련이나, 황금 자체를 실은 수레는 그 빛과 무게가 영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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