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통영 세병관이다. 수차례 와보았던 장소이고, 그때마다 설명을 들었던 터라 필자는 교감 자격 연수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홀로 앉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쪽 귀는 문화관광해설사 방향으로 열어 놓았다. 설명의 앞부분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귀의 일부만 놔두고 마음을 거두고 다른 일을 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통영 바닷바람이 잔뜩 힘이 들어간 눈을 달래어 줬다. 이젠 힘을 빼고 살아도 된다는 바람의 속삭임에 눈꺼풀은 속절없이 내려왔다. 간간이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어쩌면 이순신은 지금 시대에 더 필요한 영웅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목숨 바쳐 지켜낸 이 나라가 아직도 일본에 쩔쩔매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신다면 ‘어떤 마음이실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생각의 끝에 죄송함과 부끄러움이 겹쳐서 일어났다.
“이제부터는 등을 편하게 기대시고 왜 세병관을 이곳에 지었는지를 생각해보세요. 세병관이 처음 지어질 때는 당연히 앞에 보이는 건물들은 없었겠지요. 400년 전의 눈으로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 구즉생(久卽生)이라는 말을 소개드리면서 저의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나라 발전을 위해 큰 교육을 하시는 교감 선생님이 되세요. 장마의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통영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400년 전의 눈’이라는 말에 필자의 눈이 번쩍 떠졌다. 해설사의 말이 수십 년 동안 필자를 답답하게 구속하고 있던 편견과 선입견 등을 단번에 날려줬다. 필자의 눈 앞 있던 복잡한 현대 건물들이 하나둘 지워졌다. 그러면서 400년 전 이순신께서 내려다보신 통영의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눈이 시원해졌다. 최근 며칠 동안 무겁기만 하던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세병관(洗兵館)의 뜻에 대해 다시 찾아보았다. “하늘의 은하수를 가져다 피 묻은 병장기를 닦아낸다.”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세병관! 평화를 지키기는 가장 큰 힘은 상대보다 더 강한 힘을 갖기 위해 늘 노력하는 것이라는 이순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역부족이었지만 나라를 지켜내야 한다는 신념으로 두려움을 떨쳐낸 이순신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이순신 앞에서 과연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말문이 막혀버린 필자는 생각을 전환하기 위해 주역에 나온다는 궁즉변(窮卽變 궁하면 변하고) 변즉통(變卽通 변하면 통하고) 통즉구(通卽久 통하면 오래가고) 구즉생(久卽生 오래가면 살아남는다)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 말의 핵심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뜻을 가장 잘 실천하는 것이 자연이다. 그래서 자연은 끊임없이 변한다. 변화의 힘을 가지고 있는 자연은 인간들의 이기적인 욕심이 만들어낸 자연 파괴라는 대참사에도 끄덕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들을 위로하고 지켜주고 있다.
뉴스는 5호 태풍이 온다고 야단이었다. 뉴스의 선동에 인간들은 한 술 더 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자연은 달랐다. 자연은 겸손한 자세로 태풍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수백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세병관은 분명 자연의 모습이었다.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필자는 세병관의 너른 품을 좀처럼 떠날 수가 없었다.
우리 사회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많이 있다. 인간의 이기심, 정치인들의 탓하기, 옆 나라의 막무가내 떼쓰기, 그리고 교육! 다른 것들은 몰라도 교육을 하고 있는 필자이기에 세병관을 떠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 교육은 변화할 수 있을까?” 그랬더니 딸아이의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아빠 내 친구 이번 여름 방학에 학원 다섯 개나 다닌다.” 우리는 언제 아이들의 눈으로 교육을, 그리고 방학을 볼 수 있을까? 지워졌던 현대식 건물들이 더 어지럽게 세병관 앞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