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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이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는 경우

등록일 2019-07-23 19:51 게재일 2019-07-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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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수·교양교육원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관련 담론과 연구는 이미 많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단일 민족 신화와 동화주의 다문화 정책에 대한 비판은 많은 사회구성원들의 동의를 얻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영상’은 공분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가해자의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필자 역시 가해 남편의 무자비한 폭행과 폭력 영상을 접할 때, 오랜 기간 피해여성이 겪었을 공포와 두려움을 생각하며 강력한 법적 처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남편이 경찰에 긴급 체포되면서 했던 말(“평소에 말대꾸를 한다.”, “맞을 짓을 해서 때렸다”, “언어가 다르니깐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하니깐 그것 때문에 감정이 쌓였다.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에 대해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은 필자를 더 분노하게 하였다. 언론은 남편의 말을 ‘변명’으로 해석하고, 이에 관련하여 가해 남편을 비난하며 글로벌하게 한국 망신을 하고 있다는 등 많은 댓글이 달려있다.

필자는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단지 폭력적인 특정 남성의 문제와 ‘변명’으로 축소하기보다, 한국 사회가 결혼이주여성을 포함하여 많은 소수자들이 겪는 인권유린, 공포, 가정폭력, 성차별, 인종차별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파악하고 ‘다름’이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동하는 권력 기제를 간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가해 남편의 말은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나름의 폭력적인 ‘논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피부색, 민족적·인종적 출신, 언어, 성, 종교 등의 이유로 구분 짓고 규정하는 것은 차이를 만들고, 이러한 차이의 구성은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 구조 안에서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게 된다.

나는 타자를 어떻게 지각하고 동시에 나의 자아상은 어떠한가?

가해 남편은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을 동질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생각도 비슷하다고 간주하는 ‘우리’가 아닌 ‘그들’로 간주하고, 그 다름은 ‘자연스럽게’ 공격적 감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을 종속적인 위치에 놓고 자신의 말에 순종해야한다는 발언에서 가정 폭력을 당연한 행동으로 착각하는 남편의 무지와 젠더의식의 결핍을 엿볼 수 있다.

이주 사회에서 이주민에 대한 상(像)은 일상생활, 미디어, 정치, 교육 등의 영역에 따라 정형화되어 재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열악한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살아가는 이주민을 시혜 대상으로 표상함으로써 경제적 지원과 온정적인 지원정책이 정당화되고 있다.

이러한 주류 집단의 타자관은 이주민을 학습능력이 부족한 결핍의 존재로 규정하는 것에 기인한다. 이때 이주민은 온갖 다문화 정책의 효율적인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객체화’되고 있는 반면, 정책을 계획하는 다수사회의 구성원은 주체의 위치에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러한 타자화는 특히 결혼이주여성을 가부장제와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인한 불쌍한 피해자로 보거나 ‘돈을 받고 결혼을 선택한 못사는 나라 출신의 사람’으로 낙인찍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한국 사회 내에 작용하는 법제도와 병행되는 관습적인 차별적 담론과 시선은 그들을 공식적인 국민으로서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볼 때 한국 사회는 동질적인 ‘자신’이라는 정체성을 자기동일적이지 못한 이질적 속성을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거나 의식적으로 거부하면서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자신의 타자관을 지속적으로 반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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