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대한민국. 아버지 사업이 쫄딱 망하는 바람에 초등학교를 중도에 포기한 소년이 있습니다. 초등학교도 학비를 걷을 때였지요. 소년은 신문팔이, 아이스케키, 메밀묵 장수, 구두닦이, 숯배달 등 온갖 밑바닥 일을 두루 거칩니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 중학교 졸업장이 필요없는 야간 고등학교에 들어갑니다. 낮에는 걸레와 빗자루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공부합니다.
공장 주임이 집요하게 괴롭힙니다. 시도 때도 없이 뺨을 때립니다. “없는 놈이 건방지게 공부라니!” 소년은 수업을 마치면 밤늦게 동대문에 있는 학교에서 미아리의 판잣집까지 1시간을 걸어서 하교합니다. 한 달 버스비를 아끼면 500원을 모을 수 있습니다. 책 한 권을 살 수 있는 돈입니다. 소년은 한 권, 한 권 책을 사 모으기 시작합니다. 셰익스피어. 단테. 도스토예프스키. 괴테. 명심보감. 논어. 맹자.
늦은 밤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판잣집에 누워 책을 보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졸린 눈 비비며 공부하고, 다시 판잣집에 돌아와 책 읽는 고단한 시간이 흐릅니다.
소년은 청년이 되어 야심을 갖습니다. 어깨 너머로 배운 지식으로 빗자루, 걸레, 솔을 만들어 파는 회사를 차립니다. 맨 주먹으로 시작한 사업이 잘 될리가 없습니다. 폭삭 망합니다. 100만원을 빌리면 매일 2만원을 이자로 내는 달러 빚더미에 올라섭니다. 당시 50만원이면 35평짜리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빈털터리로 재기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청소였습니다. 양동이 하나, 염산, 세제 한 봉지 들고 거리로 나서지요.
군대를 다녀온 청년 구씨. 1968년에 아줌마 두 명과 함께 청소 회사를 세웁니다. 매일 밤을 새워 새벽까지 건물을 닦고 또 닦습니다. 60년대 경제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서울에 빌딩들이 하나 둘 생길 때입니다.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지요. 8년 후 법인을 설립할 정도로 자리를 잡습니다.
승승장구하던 회사는 삼구라는 이름을 얻은 지 6년 만에 폭삭 망합니다. 청소용 왁스를 직접 만들다 화재가 난 겁니다. 그는 몸에 전신 3도 화상을 입습니다. 공장도 불타 사라지고 빚더미에 다시 올라 앉습니다. 술을 잔뜩 마신 채 자동차를 몰고 잠수교 아래로 돌진합니다. 한강에 뛰어들 생각이었죠. 운명은 얄궂습니다. 운전 미숙으로 잠수교 돌출 기둥을 들이 받는 것으로 자살 시도는 실패합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