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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국가채무비율’ 전쟁

등록일 2019-06-02 19:51 게재일 2019-06-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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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외상이라면 사돈집 소도 잡아먹는다’는 옛말이 있다. 뒷일은 어떻게 되든지 생각하지 않고 우선 당장 좋으면 그만인 것처럼 무턱대고 행동함을 비유하는 속담이다. 문재인 정부가 재정을 크게 확대하기로 작정한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 속담이 떠올랐다. 문 대통령은 본인이 불과 4년 전에 했던 말을 뒤집고 국가채무비율 한도를 높여서라도 도무지 안 돌아가는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벼랑 끝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2016년도 예산안을 놓고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인 40%가 깨졌다. 재정건전성 회복 없는 예산안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맹비난한 바가 있다. 그랬던 분이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국가채무비율이 미국은 100%, 일본은 200%가 넘는데 우리 정부는 40% 안팎에서 관리하겠다는 근거가 뭐냐”고 물었단다. 그러자마자 집권당과 정부 쪽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확대재정의 필요성을 부르대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에서는 확장적 재정정책 토론이 무성하게 쏟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정부 관계자도 “대부분의 나라가 100% 안팎이고, 일본은 무려 250%에 달한다”며 “확장속도가 오히려 더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한 정치권의 공방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야당에서는 후세에 부담을 지우는 ‘나랏빚’ 증가를 조심해야 한다고 강력히 비판한다. 확장 재정 기조는 내년 총선을 의식한 ‘선심성 돈 풀기’이며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덮으려는 방만한 국정이라는 게 야당의 시각이다.

4조 원대의 적자 국채 발행 시도와 ‘박근혜 정부 마지막 해의 국가채무비율을 39.4% 이상으로 높이라’는 부총리의 지시를 폭로했던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 생각이 난다. 범법자 취급을 서슴지 않던 기재부는 얼마 전 고발을 취하했고, 검찰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렇게 되면 신재민의 폭로처럼 문재인 정부는 애초부터 국가부채 확대 카드는 진작부터 만지작거렸다는 얘기가 되는 거 아닌가 싶다.

대통령의 판단 기준이 바뀐 것을 ‘상황변경’의 논리에 대입한다면 일견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생산성만 보장된다면 부채비율을 높이는 일을 무조건 터부시할 일은 아닌 것도 맞다. 더욱이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가속화, 생산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진행되는 마당에 소요예산이 일정 부분 늘어나는 것도 불가피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재정확대 정책이 품고 있는 위험요소는 심각하다.

재정확대 찬성론자들의 논리는 OECD의 평균 국가채무비율이 110%가 넘기 때문에 국가채무비율 40%를 넘겨도 국제 수준으로 보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가가 처한 상황과 경제의 질을 무시하고 단순하게 채무비율만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 경제의 경우 워낙 자생 기반이 취약하고 대외의존도가 높은 까닭에 국가부채 수준이 낮아도 부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가 늘리려고 하는 재정의 ‘지출 소모성’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하게 민생을 지원하는 시혜성 지출이 많아 예산 낭비 성향이 높다는 점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복지예산이란 한 번 지출되기 시작하면 다시는 절감할 수 없다는 특성이 있다. 예산을 필요한 곳에만 쓰는 재정개혁을 서두르고 재정지출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먼저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인한 경제실패를 덮기 위해 국가재정을 허물어 쓰기로 아예 작정한 것인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온갖 행태가 수상하다. ‘재정확대’가 ‘경제 회생’으로 이어지고, 다시 ‘세수증가’를 불러와 ‘재정안정’을 구축하는 선순환 체제가 구축되면 좀 좋을까. ‘외상’ 준다고 마구 때려 잡아먹은 사돈네 소값 ‘외상’은 대체 누가 갚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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