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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영의 난(亂)’

등록일 2019-04-28 19:31 게재일 2019-04-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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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유승민의 선택은 옳았나.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 여의도 정치권 한가운데에서 요즘 가장 곤혹스러운 인물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유승민일 것이다. 안철수 역시 좌불안석이긴 마찬가지일 테지만 짐작이 쉽지 않다. 개혁적 보수, 합리적 진보의 ‘중도정치’ 건설에 뜻을 합쳤던 두 사람은 좌우 거대정당의 블랙홀 구심력에 속절없이 부서지는 바른미래당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하리라. 용어도 생소한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정국혼란의 진원지는 단연 바른미래당 지도부다. 지난 대선에서 실패한 유승민과 안철수는 중도정치 건설의 꿈을 품고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을 합쳐 바른미래당을 꾸려 놓고 일단 뒤로 물러앉았다. 거대 양당의 인력을 버티면서 독자적인 정치색을 굳건히 만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숙제였다.

그 첫 번째가 좌파-우파로 통칭되는 거대 양당과는 차별화된 정책 능력이었다. 어젠다를 생산하고 이슈를 선점해나가는 결기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은 창당 초기부터 정체성 혼란을 드러냈다. 2018년 연초 결성된 통합추진위원회에서 일어난 ‘햇볕정책 폐기’ 논란이 그 시작이었다. 바른정당이 ‘햇볕정책’을 존중한다고 선회함으로써 곧바로 봉합되긴 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혼란한 정국에서 돌이켜보면, 바른미래당은 ‘중도정치’에 대한 확고부동한 철학을 생산하지도, 공유하지도 못한 오합지졸들의 집합체였다. 꼴통 보수정치를 바꾸고 싶어 하는 일부와 호남에서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 정치꾼들이 한쪽 발만 들여놓고 오직 ‘교섭단체’의 꿀단지를 향유하기 위해 뭉친 임시천막, 비 맞은 철새들의 초라한 둥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바른미래당의 허술한 실체는 국민이 먼저 알아챘다. 민심은 좀처럼 지지를 보내주지 않았다. 정의당을 2중대, 민주평화당을 3중대로 삼은 좌파정당 본부중대 더불어민주당의 흡인력은 깊어만 갔다. 손학규 대표-김관영 원내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바른미래당은 민주당의 4중대, 호남 정치의 별동대로 색깔을 호시탐탐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패스트트랙’ 난장판의 본론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김관영과 국회의장 문희상이 합작 행사한 ‘사보임’은 우선 언어적으로 치명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사임(辭任)의 사전적 의미는 ‘맡아보던 일자리를 스스로 그만두고 물러남’이다. 오신환과 권은희 두 사람 모두 스스로 물러나지 않았다. 해임(解任)과 보임을 합친 ‘해보임’이라고 부르지 않는 한 어불성설인 것이다.

국회법 48조 6항은 ‘임시회의 경우에는 회기 중 개선될 수 없고’라고 명시돼 있다. 반쪽짜리 최고위원회의에서 “내가 더불어민주당을 확실하게 지킬 것이다. 왜? 이게 내가 추구해온 정치적인 가치니까”라고 했던 손학규의 말은 단순한 실언이었을까. 손학규를 비판했다가 ‘당원권 정지 1년’이라는 퇴출 조치를 당한 이언주 의원의 “찌질하다”는 비난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김관영의 난(亂)’은 국회의장 문희상의 동조 때문에 가능했다. ‘신(新) 동물국회’라는 비아냥으로부터 문희상의 책임은 자유로울 수 없다. 너나없이 그럴싸한 이중인격의 사시이비(似是而非)다. ‘협치’의 정신이란 모조리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정치보복에만 혈안이 된 그릇된 통치 기조에 그 시원(始原)이 존재한다.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손학규와 김관영, 그리고 문희상은 틀렸다. 정치를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편파적 법안을 급행열차(패스트트랙)에 올려놓고 시간만 보낼 게 뻔한 꼼수 정략을, 짜고 치는 술수로 밀어붙이는 것은 결코 ‘바른’길도 ‘미래’를 위한 길도 아니다. “쉽고 편하고, 계산기 두드려서 그때 더 이익이 많아 보이는 길로 가지 않겠다”는 유승민의 작심은 여전히 옳다. 그러나 지금은 ‘진심’만 가지고는 안 된다. 이 난국이야말로 어긋난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능력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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