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어려서부터 관계(關係)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이야기는 반복 수준을 넘어 세뇌(洗腦)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천은 역시 다른 모양이다.
필자는 관계는 곧 거리(距離)라고 생각한다. 관계는 대상과의 거리 맺기이다. 거리 조절을 잘 하면 관계가 좋아지고, 거리 조절에 실패하면 관계는 어긋난다. 너무도 당연한 이론이지만 우리가 관계에 있어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경험하는 이유는 바로 거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베스트셀러에 빠지지 않는 책이 있다. 바로 ‘관계와 거리’에 관한 책들이다. 처세술, 인생론 등으로 명명되는 이런 책들이 많이 팔리는 현상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계 맺기, 즉 거리 조절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리를 생각할 때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을 떠올린다. 이 말을 잘 활용한 시가 있다. “다가서면 관능이고/물러서면 슬픔이다./아름다움은 적당한 거리에만 있는 것/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안 된다/다가서면 눈멀고/물러서면 어두운 사랑처럼 (후략)” (오세영 ‘양귀비’)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안 되는 거리는 얼마일까? 이 거리를 오세영 시인은 “적당한”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필자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답이 바로 “적당한”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거리를 계속 찾고 있지만, 아마 평생 못 찾을 것 같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가 지금 매우 어렵다. 그 해결책으로 요소들 간의 거리에 대해 깊이 고찰해 볼 것을 제안한다. 필자는 우리 교육에서의 거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교육계에는 다양한 거리가 존재한다. 학생과 학생 간의 거리, 학생과 교사 간의 거리, 학생과 학부모 간의 거리, 학부모와 교사 간의 거리. 학부모와 학교 간의 거리, 교육과 시대 간의 거리 등! 그런데 혼돈 가득한 지금 교육계의 상황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인 거리를 갖고 있지는 않은 것이 확실하다.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SKY 캐슬”이다. 필자는 교사이기 전에 두 딸을 둔 학부모의 입장에서 “학부모 관심과 교육 간의 거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교육의 몫을 따지기란 힘든 시대가 되었다. 사회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교육의 경계도 많이 허물어졌다. 예전에는 학교가 교육을 담당하는 주된 기관이었다. 그 때는 교육에 있어 학교와 교사의 역할 비중이 매우 컸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공교육을 훨씬 능가하는 사교육 기관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면서 학교와 교사의 역할 비중은 상당히 줄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와 교사, 그리고 학교 교육에 대한 생각이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비록 드라마이지만 “SKY 캐슬”에서 보듯 요즘 교육은 학교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교육과 학부모 간의 거리는 매우 가까운 반면, 학부모와 학교 간의 거리는 매우 멀게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거리가 변한만큼 교육에 대한 이상도 변했으면 다행인데, 우리 교육 현실은 여전히 점수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점수에 더 안달을 느끼게 되고, 멀어진 학교보다 가까워진 사교육에서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교육 기관에는 아무리 많은 돈을 가져다 줘도 전혀 아깝게 생각하지 않지만, 학교에는 단돈 100원을 내도 아깝게 생각하는 게 지금의 교육 현실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교육 당국, 그리고 학교와 교사의 문제도 매우 크다.
분명한 것은 교육과 학부모 간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교육은 본질에서 더 멀어진다는 것이다. “교육 1번지 목동 엄마 따라잡기” 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이를 증명해준다. 그래서 학부모로서 필자는 교육과 좀 더 헐렁해지기로 했다. 그리고 필자가 빼앗아 간 교육에 대한 거리를 학교와 교사들에게 돌려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