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해년(己亥年) 새해가 밝았다. 특히 올해는 재물과 복의 근원을 상징하는 황금돼지해로, 지난 어느 해보다 풍요롭고 행복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새해 첫날이면 우리민족은 지난날 안 좋았던 일은 모두 잊고 한 해를 밝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로 다채로운 세시풍속을 즐겼다. 이러한 세시풍속은 우리 조상들의 삶속에서 대대로 지켜 내려온 생활에 대한 습관으로, 일 년을 주기로 철에 따라 되풀이되는 고유한 풍속을 말한다. 의식주를 비롯해 음악과 무용, 놀이 등 문화의 모든 요소가 들어있어 전통문화의 보고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중 떡국과 세화는 새해를 송축하고 무병장수와 재앙을 막기 위한 대표적인 음식과 그림으로 꼽을 수 있다.
설날 떡국을 먹는 것은 흰 가래떡에 한 해를 시작하는 시간의 경건함을 담고 있으며, 고대 태양 신앙에서 유래됐다. 나이떡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새해 첫날 떡국을 먹음으로써 비로소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희고 잡티 하나 섞이지 않은 떡처럼 한 해를 밝게 보내라는 의미와 함께 순백의 떡과 순백의 국물을 마시며 지난날 안 좋았던 일은 모두 잊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축복의 메시지도 담겨져 있다. 특히 떡국에 사용하는 떡은 가래떡을 얇게 썰어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 사용하는데, 이 모습은 마치 엽전을 연상시킨다. 옛날 화폐인 엽전처럼 생긴 떡국을 먹으면서 새해에는 돈도 많이 벌고 풍족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담고 있다.
새해가 되면 세배, 세찬, 설빔과 함께 송축하고 액운을 막기 위해 세화(歲畵)를 즐겨 그렸는데, 이는 왕과 신하들이 서로 주고받던 궁중풍속이었다. 질병이나 재난 등의 불행을 사전에 예방하고 한 해 동안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벽사적이고 기복적인 성격을 띠고 전개되었다. 문짝에 주로 붙이기 때문에 문배(門排) 또는 문화(門<FFFC>)라고도 했는데, 농촌보다는 정교한 대문을 가진 서울 등의 도시 주택을 중심으로 성행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풍습화된 세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반 대중적인 성격을 띠며 확산되기 시작했다. 관원들은 대개 도화서에서 그려 올린 세화를 임금으로부터 하사받고, 민가에서는 광통교 일대의 그림 가게에서 구입해 붙였다고 한다. 이 광통교에 나돌았던 세화들은 도화서의 화원들이 그린 것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세화들도 많았다고 한다. 세화의 주 소비층은 처음에는 주로 사대부들이었으며, 그림의 내용은 도교적 인물과 길상의 의미를 지닌 식물 등이 주류를 이뤘다. 이후 서민층까지 확산되면서 서민들이 이를 흉내 내어 해마다 정초가 되면 세화를 사서 붙이거나 그들의 주거 공간을 장식하며 민화로 발전시켜 나갔다. 고문헌을 살펴보면 “설날 대문에 세화를 붙이는데 갑옷을 입고 한 손에 도끼를 들고 서있는 장군상을 그려 붙이며 이를 문배라고 부른다.”라고 전하고 있다. 이는 밖에서 병을 몰고 오는 역신이나 화재를 일으키는 신, 재앙을 불러오는 신 등 모든 악귀를 쫓아내는 길상과 벽사의 함축적 의미를 담은 세화의 상징성을 의미한다.
새해가 되면 액을 막고 복을 바라는 목적으로 성행했던 과거의 세화풍습은 급속한 현대사회의 변화 속에서 주술적 의미가 점차 희박해지면서 연하장이라는 대중문화를 가져왔다. 이제는 IT산업의 발전과 모바일 문화의 변화에서 오는 이모티콘과 특수문자가 대신하고 있다. 벽사적 성격의 ‘문배용 세화’와 길상적 성격의 ‘송축용 세화’ 모두는 인간의 행복과 장수에 대한 기원과 믿음을 바랬던 우리 선조들의 멋스런 세시풍속이었다. 황금돼지해를 맞는 이번 설날 아침에는 축복과 행운이 가득 새겨진 건강한 이모티콘으로 세화의 진정한 의미를 전하는 친교의 시간이 마련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