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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그 오묘한 의미

등록일 2018-10-10 20:47 게재일 2018-10-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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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정<BR>문화부장
▲ 윤희정 문화부장

10월은 문화의 달이다. “문화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까? 영국의 문화연구자인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문화’를 영어 단어 중에서 가장 난해한 몇몇 단어 중 하나라고 했듯 문화는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다. 일상에서도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전통적인 것, 새로운 것, 아니면 특이한 것? 문화는 이런 것들을 포괄한, 우리 삶 자체다. 우리의 삶을 포괄하고 있는 문화, 같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우리의 삶이 다 다르듯 문화 역시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다양한 형태의 문화를 인정하지 못하고 획일화된 고급문화만을 문화로 여기거나 아니면 저급문화를 문화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경제 발전에만 치중한 나머지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해서 아직 문화의 개념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에서 말하는 ‘문화’는 사람의 사상체계 전반을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 골목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아쉬운 마음을 안고 엄마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던 추억처럼 문화에 대한 동경과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바쁜 생활에 지쳐 있는 이들에게 위에서 내려다보는 문화가 아닌 옆에서 함께 놀 수 있는 문화를 들고 마음을 두드리고자 많은 문화 관계자들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지금은 정보화 사회이고, 삶의 질을 요구하는 사회이며, IQ 못지않게 EQ의 시각적 사고,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문화현상과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에서 자신이 필요로 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을 선택해 제대로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한 세대가 돈을 벌면 다음 세대는 권력을 추구하고 그 다음 세대는 예술에 몰두한다는 토마스만의 말처럼, 한국의 20세기가 경제와 정치의 시대였다면 21세기에는 그 터전 위에서 문화의 시대가 펼쳐질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이념에 의해 총이나 칼로 싸우던 시대에서 현재는 반도체나 자동차로 싸우고 있는가 하면 일본의 자본이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등 문화로 대결하는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거리를 걸으면 아이들의 웃음에 절로 마음이 그득해지는 가을이다. 어려운 여러 여건 속에서도 조금은 마음을 열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상에서 아름다움, 정신과 마음의 온전함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힘겹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하루하루를 지내는 게 일상적이다. 하지만 다시 분명한 것 하나는 이렇다. 누구도 힘겹거나 지겨운 하루를 끝까지 감내하려는 사람은 없으며 이를 벗어나고 내팽개치기 위해 일탈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때 문화와 더불어 우리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소박한 바람이다.

마침, 사색의 계절 가을이다. 붉은 단풍과 함께 차고 깊은 가을하늘을 올려다보며 사색에 젖기도 하고, 맑은 바람에 몸을 맡기고 한나절 시간을 보내고 싶어지는 때다. 숨가쁘게 달려왔던 여름을 돌아보며 홀로 지쳐있는 자신의 모습을 살피는 시기이기도 하다.

김현승 시인은 ‘가을의 기도’에서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라고 노래했다. 그러고는 이어서 자신을 “겸허한 모국어로” 채워 달라고 소망했다. 시인이 웅크리고 앉아 혼자 시를 썼듯, 우리도 각자 혼자가 되어 소리 내어 시를 읽자. 시는 모름지기 읽는만큼 느끼게 되고, 느끼는만큼 성숙해지는 게 아니겠는가.

올가을도 잃어버렸던 또는 잊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 계절이기를 바란다. 그러면 치열하게, 전투적으로 살며 서로 다투고 상처 주는 일들도 조금은 수그러들지 않을까. 단풍 한 잎사귀보다 작지만 간절한 바람은 나무만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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