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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가치

등록일 2018-08-29 20:42 게재일 2018-08-2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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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

유신(維新)은 낡은 제도를 고쳐서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라면 참으로 좋은 제도이다. 우리나라에도 유신시대가 있었다. 이른바 ‘10월 유신’이 그것이다.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안보태세의 확립과 새마을운동이라는 근대화 프로젝트를 통한 부국강병을 표방한 대변혁이었다. 그러나 10월 유신은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유신의 진정성보다 정권유지의 방편으로 일본 메이지유신의 껍데기만을 모방해 온 것으로 해석된 까닭이다.

우리보다 한 세기를 앞서서 일본에도 유신의 바람이 불었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다. 이는 메이지천황 때 일어난 정치적 변혁으로, 쇼군이 지배하던 막부정치를 무너뜨리고 천황이 직접 다스리는 일본의 근대화였다. 올해가 메이지유신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을 바꾼 바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국해양대 해양문화콘텐츠사업단에서 주관하는 동아시아 해양인문투어에 합류하여 메이지유신의 심장부인 야마구치 탐방의 길에 나섰다. 부산항에서 부관페리를 타고 밤을 달려 도착한 곳이 야마구치의 서단 시모노세키였고, 해양을 통한 기억의 소환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야마구치는 일본열도의 중심인 혼슈 서쪽 끝에 있는 현이며, 현재의 일본 수상인 아베 신조의 지역구이다. 아베 뿐 아니라 근대 일본의 많은 정치인들이 이곳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30년의 짧은 생애동안 일본의 정치와 사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요시다 쇼인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 사설학교인 ‘쇼카손주쿠’를 열고 하급무사들을 가르쳤는데, 그의 제자들이 성장하여 바쿠후(幕府)를 전복시키고 왕정복고를 실현한 메이지 유신의 주역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일본 제국의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도 그의 제자이다. 요시다 쇼인은 일본 우익사상의 뿌리이자 야스쿠니 신사의 시초이고 메이지유신이 가능케 한 사상가로 추앙받고 있다. 우리의 영웅인 안중근이 일본의 역적인 것처럼,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은 우리 민족의 원수다. 이런 까닭으로 요시다 쇼인에 대한 정보는 국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비판하고 대비할 수도 있는 법이다. 어쨌든 이들이 일본의 중앙이 아니라 변방인 바다를 끼고 있는 야마구치의 작은 고을에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변방의 해양공간으로부터 불어온 변혁의 바람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바다를 끼고 있는 포항은 당연히 해양에 대한 관심을 깊이 가져야 하는 고장이다. 시대적인 상황 또한 그렇다. 정보화시대인 21세기는 지식의 축적보다는 네트워크가 존중되는 시대이므로 보다 유연한 사고와 다양한 감각, 풍부한 상상력이 요구된다. 창의적 상상력과 해양문화를 접목해야 하는 까닭이다. 여정 중에 만난 작은 항구 모지코(門司港)는 여러 부분에서 포항이 오버랩되는 도시였다. 일본의 근대화를 견인하였고, 개항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모지항은 ‘모지코레트로’라는 명칭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메이지시대에 지어진 건물을 개축한 레트로(추억, 향수의 뜻) 건축이 많으며, 오래된 거리 모습과 새로운 도시기능을 절묘하게 섞어 놓은 도시형 관광지를 구현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관광용 인력거가 달리고 번개시장의 다양한 상품과 넘쳐나는 인파, 맑은 바닷물에 직접 발을 담글 수 있을 정도로 인접한 수변공간의 관리 등 포항의 도시재생 모델로 삼을 만한 곳이었다.

뜻밖의 자연재난 이후 도시이미지의 급속한 추락이라는 재앙에 직면한 포항의 현실이 심각하다. 도시이미지의 추락은 인구감소 뿐 아니라 공장의 일감 수주에도 영향을 미쳐 철강공단 내에서 휴폐업 내지는 매각을 기다리는 공장이 수두룩하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절망하지 말자. 재난으로 가치가 하락한 도시를 재생시킨 예는 수없이 많다. 위기가 곧 기회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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