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아는 대구·경북 지역 인사들 중에 뉴스가 보기 싫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유인즉 기분 나쁜 뉴스만 나와서 볼 때마다 속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뉴스가 이들을 속상하게 할까? 촛불시위, 전직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제19대 대통령선거, 6·13 지방선거 같은 것이다. 최근의 남북대화마저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최근 2년 동안 진행된 일련의 정치적 사건에서 느끼는 감정의 일단을 뉴스 안 보는 것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 이유를 들어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영어의 몸이 됐는데, 재판 소식을 전하는 뉴스가 자주 나오고, 그때마다 초췌한 얼굴에 수의를 입고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은 다른 지역의 거센 민주당 바람과는 상관없이 자유한국당을 선택했고, 그 결과로 나타난 선거지도에 이쪽만 섬처럼 빨간색으로 남았다. 선거가 끝난 후 한 지인은 “보수는 완패했는데 나는 완승했다.”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전국적으로 보면 한국당이 참패했지만, 자신이 찍은 후보들은 다 당선되었다는 건데, 이분의 선거 관전평은 참으로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지역 사람들의 뉴스 기피 현상이나 지방선거에서 드러낸 표심을 보면서 대구·경북 지역민의 독특한 정치적 정서를 일컫는 말인 ‘TK 정서’를 떠올리게 된다.
‘TK 정서’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문민정부 때였다.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으로 이어진 30년 간 이 지역은 정권의 산실이었고, 권부의 핵심을 이뤘다. 하지만 1992년 대통령 선거 때 이 지역은 후보를 내지 못했다. 대신 부산·경남 출신인 김영삼 후보를 지지해 당선시키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 초기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도입 같은 굵직한 개혁을 밀어붙인다. 이로 인해 이 지역 출신 실력자들이 대거 실각하게 됐고, 이 지역 유권자들이 배신감을 느끼면서 문민정부에 등을 돌리게 됐다. 이때 나온 용어가 ‘TK 정서’다.
그러고 나서 1997년 15대, 2002년 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지만 김대중 후보,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고, 이로 인해 이 지역은 한동안 중앙권력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박정희의 분신과도 같은 박근혜가 정계에 화려하게 등장하면서 새로운 기대를 가지게 됐고, 결국 대통령으로 만드는 저력을 뽐냈다.
그렇게 만든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고, 결국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정권에 충성을 바친 인사들이 적폐청산이란 명분 아래 줄줄이 묶여 들어가고, 그 불똥이 전임 이명박 대통령에까지 튀었다.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은 이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그 동안 절대적 지지를 보낸 지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전직 두 대통령의 잘못을 상당 부분 인정하면서도 그 충격과 상실감은 타지역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기에 촛불집회, 대통령 탄핵과 구속, 문재인 정부의 탄생, 민주당에 압승을 안겨 준 지방선거 등 주요 정치적 사건에서 이쪽과 대립되는 세력이 주도하는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면서, 대구·경북은 독특한 정치문화로서의‘TK 정서’를 다시금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고립은 TK를 위해서도,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정치세력을 지지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 정서라는 것이 단순히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맹목적 결집이어서는 안 된다. 한 지역의 정서가 공감을 얻으려면 대한민국, 나아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정서’를 넘어 ‘정신’으로 승화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를 읽고 변화를 주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보수라고 언제나 추억을 먹고 살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