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봄이다.
한차례 꽃샘추위가 지나간 뒤 연일 15~16도를 넘는 영상의 온도가 대지를 덮으면서 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하다. 따뜻함이 밀려오면서 며칠전까지 입었던 겨울 외투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얼마전 모질게 추운 겨울날 두꺼운 옷에다 깃을 세운 채 다닌 것을 생각하면 인간의 내면이 참으로 간사하다는 생각이다.
계절의 변화에 한치의 오차가 허용되지 않듯 벌써 개나리가 도로변이나 대학, 관공서, 아파트 화단에서 샛노란 꽃을 피우며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개나리 꽃은 언제 보아도 좋다. 화사한 노란 옷으로 단장을 하고 지나가는 길손에게 손짓하고 있다.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사람일지라도 노란 옷을 입은 개나리에게 무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나리꽃을 보는 순간, 저마다 `이제 봄이 왔구나`, `개나리가 만개했구나`, 혹은 어릴 때 자주 불렀던 동요 `개나리`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개나리 꽃을 보면 잠시나마 마음이 편하다. 꽃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왔다는 게 뭔가 긍정적인 설렘이 다가오는 것 같다.
하지만 또다른 생각도 해본다. 사람들은 개나리가 꽃을 틔우는 불과 며칠만 개나리를 생각하고 인정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꽃을 틔운지 며칠이 지나 꽃이 사그라진 후 무수한 잎이 돋아나면 사람들은 더이상 개나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 나무가 개나리인지도 잘 모르고 지나친다. 그렇다고 개나리가 우리의 몸에 큰 도움이 되는 약초도 아니기에 개나리의 존재는 여기까지라는 마음이다.
개나리에 대한 생각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비해 보면 어떨까.
지금의 현실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2명이나 동시에 구속된 것을 비롯,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낙마 이후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 운동 등 하루하루 새로운 소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지사를 비롯 교육감, 광역의원, 기초의원 등 수백명의 정치인들이 각자 저마다의 자질과 경륜을 내세우고 상대를 넘어뜨리기 위해 총성없는 전쟁을 펼치고 있다.
개나리는 1년 365일 중 꽃을 틔우는 불과 며칠만 사람들에 각인된 후 그 후는 잊혀진 존재로 남는 것이 현 정치판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대구경북 등 지역의 경우만 해도 각종 단체장이나 의원 등에 출사표를 던진 사람은 수천명이 넘는다.
하지만 오는 6·13선거일 이후는 당선의 영광을 거머쥔 극소수의 사람 외에는 모두 잊혀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각자 나름대로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물론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승리를 하면 좋겠지만 승리의 자리는 한정됐고, 그것을 노리는 경쟁자가 훨씬 많으니 승리의 기쁨보다는 패배의 쓰라림을 경험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개나리는 자신의 일생 중 며칠밖에 시선을 끌지 못하지만 묵묵히 자신을 사물의 이치에 맞춰주고 있다. 현세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지구상에 필요하지 않는 것들이 없듯이.
장자(莊子) 인간세편에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이 나온다.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쓸모가 있다는 말이다. 세속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 반대쪽에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도가사상에서 나온 말이나 작금의 현실에서 한번 곱씹어 봄직하다. 선거에서 패배한 많은 사람들이 당선된 사람보다 결코 못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번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들은 최선을 다한 후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사회의 또 다른 보탬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주기를 당부하고 싶다. 한쪽 귀가 닫히면 또 다른 귀가 열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