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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역사 길 걷기

우정구(객원논설위원)
등록일 2018-03-05 20:53 게재일 2018-03-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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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중심으로 시작된 3·1운동은 대구에서는 일주일 뒤인 3월 8일 거사가 일어난다. 서울에서 3·1운동이 비밀리에 준비되고 있을 때 대구에서는 기독교 유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준비했다. 일본 순사의 경계를 피해 많은 사람이 모여야 했기에 토요일이면서 대구 최대 시장인 서문시장 장날인 토요일(3월 8일)을 선택했다.

기독교 인사들과 계성학교, 대구고등보통학교, 신명여학교 학생과 교사가 중심이 돼 전개됐다. 학생들은 일본순사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교복 대신 장사꾼 복장으로 갈아입고 장터로 나섰다. 지금 대구시 중구 동산동에 있는 90개 계단으로 이뤄진 `3·1운동 길`은 당시 학생들이 거사를 준비하며 다녔던 길이다. 서문시장에서 만세를 외친 사람이 1천명을 넘었다. 운동에 참여한 157명이 일본 순사에 체포되고 그 중 76명이 형을 선고 받았다.

90계단 길에서 제중원(현재 동산의료원)을 거쳐 서문시장으로 이어지는 이곳에는 당시 기독교 전파를 위해 한국에 왔던 선교사들이 살던 집들이 남아 있다. 가곡 `동무생각` 속의 청라언덕도 만날 수 있다. 대구의 몽마르뜨 언덕이라 부른다. 작곡가 박태준 선생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이곳은 3·1운동의 역사가 스며있는 곳이다.

100년 전 대구에 처음 들어 와 대구를 사과나무 고장으로 알렸던 사과나무가 보존돼 있다. 독립유공자를 기리는 독립 유공자 명패도 보인다.

90계단 길을 따라 내려오면 길 건너 편에 우뚝 선 성당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나라 3대 성당의 하나인 계산 성당이다. 서울의 명동 성당처럼 대구가톨릭 역사를 대변한다. 그곳을 따라 걷다보면 독립 운동가이며 민족시인인 이상화 선생의 고택을 만나 볼 수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통해 국가를 잃은 우리 민족의 설움과 분노를 표현한 그분이 태어났던 생가다. 대구시민의 서명으로 생가는 간신히 보존될 수 있었다. 3월 8일은 대구시민이 일제의 침탈에 항거해 독립만세를 처음 부른 날이다. 3·1절의 의미를 대구의 근대 역사 길에서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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