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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이

등록일 2018-03-02 20:53 게재일 2018-03-0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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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자주 거론되는 명망 있는 원로시인이 하루아침에 괴물로 전락했다. 오래 전 술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 시인이 `괴물`이란 제목의 시를 써서 그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소위 `Me too`운동으로 피해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관행처럼 자행되어온 각계의 성폭력 실상이 하나씩 까발려지고 있다. 연극계의 대부로 군림하던 연출가, 유명 배우, 법조계 판사, 천주교 신부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잇달아 치부를 드러낸 채 백일하에 끌려나오는 형국이다.

피해자들이 겪었을 치욕과 고통이 우선이지만, 가해자들 역시 그동안 쌓아올린 지위와 명성과 업적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쓰레기로 매도되는 현실에 여간 참담한 심정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비행이 지탄받아야 하는 것처럼 업적과 공로를 인정하는 일도 외면해서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이다. 다만 예술과 지성과 권위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와 상대의 약점을 악용해서 성적 욕망을 채우려 했다면 뒷골목 불량배들이나 다름없는 파렴치한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라도 기초가 부실한 사상누각이라면 웬만한 지진에도 폭삭 무너지고 마는 것처럼, 외관상으론 대단한 예술가나 법관이나 성직자들이 일거에 패륜아로 전락하는 데에는 뭔가 기본적인 것에 부실과 하자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사람을 다른 말로 인간이라고도 한다. `인간(人間)`이란 한자어는 본래 `사람이 사는 세상`의 의미인 `인생세간(人生世間)을 줄인 말인데, 그것이 `사람`이란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일본의 영향이라고 한다. 아무튼 지금은 `인간관계`니 인간문화제`니 하는 말처럼 사람이라는 말보다 인간이라는 말이 더 흔하게 쓰이고 있다.

`人間`이란 글자 그대로 `사람사이`다.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사람의 경우에는 엄격한 의미에서 인간이라 할 수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만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성립한다는 말이고, 인간다운 인간으로서의 의미와 가치도 인간관계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도리는 유치원에서 다 배운다는 말이 있다. 유치원에서 가르치는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과 질서와 규범을 지키는 사회성이야 말로 무엇보다 우선이고 기본이다. 학식이든 지성이든 품격이든 그런 기본이 있고난 다음에야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지성과 품격을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들조차도 가장 기본적인 것에는 유치원생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우선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치원생 수준의 기본적인 것부터 충실하게 다지는 것이 먼저다. 교육도 예술도 종교도 정치도 그것에서부터 시작한다면 훨씬 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런 기본을 외면하거나 무시하고 훼손하고서는 어떤 교육도 종교도 예술도 이데올로기도 결코 바람직하거나 정당한 것이 될 수가 없다.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사회다. 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온갖 주장과 논리가 난무하고 이해득실과 시비곡직이 난마처럼 얽히고설켜 혼란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단순하고 소박하게 기본을 회복하는 일이다.

학벌이나 지위나 재물의 고하를 막론하고 남에게 해악을 끼치는 인간은 가장 저급한 인간이다.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성의와 공감능력이야말로 사람을 평가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진실과 고통에 누구보다도 민감하고 절실하게 공감해야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피해자들이 받을 치욕과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제 욕구를 채우는 짓을 자행해 왔다는 것에 무슨 변명의 여지가 있겠는가. 사람사이에 있어야 할 기본도 못 갖춘 파렴치한이라는 말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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