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슈뢰더의 5번째 결혼

등록일 2018-01-31 21:06 게재일 2018-01-31 19면
스크랩버튼
▲ 홍성식<br /><br />특집기획부장
▲ 홍성식 특집기획부장

예상치 못한 일이다. 일흔셋 독일 사내의 결혼이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전직 독일 총리가 5번째 결혼을 한단다. 그 상대는 한국인 여성.

세간의 일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한 번이면 족할 결혼인데…. 그는 부정할 수 없는 바람둥이” 혹은 “나이가 스물여섯 살이나 차이 난다던데 희한한 일”이라며 입방아를 찧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사람은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oder)와 그의 연인 통역가 김소연 씨. 이쯤 되면 슈뢰더가 대체 어떤 인간인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듬직한 풍모와 재기 넘치는 말솜씨로 `친(親) 미디어형 정치인`으로 불린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젊은 시절엔 철저하게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던 사람이었다.

14살에 학교를 그만둬야 했을 정도로 가난했던 슈뢰더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변호사로 일할 때는 무정부주의를 지향하던 과격 도시게릴라 RAF(독일 적군파)를 변호했을 정도로 급진좌파이기도 했다.

이후 그는 1963년 독일 사회민주당(SPD·이하 사민당)에 입당해 좌익이념에 기반한 정치력을 키워나갔고, 1978년에는 사민당 내부 청년조직인 `젊은 사회주의자`의 리더에 올랐다.

그가 마르크스주의자에서 온건한 중도좌파로 변신을 꾀한 시기는 독일 통일을 전후한 1990년대 초반. 1998년 총리직을 놓고 헬무트 콜(Helmut Kohl·1930~2017)과 맞붙었을 땐 새로운 형태의 중도노선을 제시하며 `좌파 속의 우파`라는 슬로건으로 선거운동을 전개했다. 당연지사 사민당 내 정통 마르크스주의자와 좌파들은 비난을 쏟아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총리 중 가장 급진적인 정책으로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과 달리 슈뢰더는 재임 기간 내내 친기업적 정서를 보이는 등 진보적인 색채를 쉬이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에서 독일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2002년 유럽 전역이 큰 홍수로 공황상태에 빠졌을 때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준 것은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내기도 했다.

`부시의 푸들`이라 조롱받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Tony Blair) 총리와는 달리 `9·11사태` 이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단호하게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 것도 반전을 외치던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슈뢰더의 `독립적이고 강단(剛斷) 있는` 행보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정치인이 권력욕이 강하다는 것은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나쁜 의미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불우한 과거에 대한 보상심리로 권력욕과 출세욕이 지나치다`는 평가를 받은 슈뢰더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내 욕심(?)` 또한 대단했다.

총리 재임 시절부터 `세 번 이혼하고 네 번 결혼한 사나이`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에 독일 언론은 우스개 삼아 그를 `아우디 총리`(독일의 자동차 제조업체인 아우디는 엠블럼이 4개의 겹친 원이다)라고 불렀다.

이번 김소연 씨와의 결혼으로는 `오륜기(五輪旗·지구 위 5개 대륙을 상징하는 원이 그려진 올림픽기) 총리`라는 별명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슈뢰더는 단호하다. “하늘과 땅 사이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무수하며, 운명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란 말로 5번째 사랑을 변호한 것. 21세기는 결혼과 이혼, 비혼과 독신이란 개인의 선택이 비판받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그러니, “한국의 문화를 배우며 평범한 아저씨로 살고 싶다”는 슈뢰더의 5번째 결혼을 문제 삼을 이유도 없다.

사랑한다고, 그래서 결혼하고 싶다는 일흔셋 `젊은` 그의 선택을 우리 중 누가 주제넘게 책망할 수 있을까?

데스크칼럼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