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페서(polifessor)는 politics(정치)와 professor(교수)의 합성어다. 현실 정치에 뛰어든 교수를 의미하는 말이나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가 많다. 교수들이 배운 학문을 기초로 해 현실 정치가 이상적으로 흘렀다면 부정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구성된 우리나라 역대 내각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교수출신 장관의 비율이 20~30% 정도는 된다. 그것이 보수나 진보정권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한국의 교수만큼 정부 요직에 자주 임명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러다 보니 우리나라 유명대 교수들은 정치와 고급 행정관료와의 네트워킹은 필수란 말이 나온다. 한국의 교수사회는 이런 폴리페서로 인해 국가권력을 견제한다는 인상보다 오히려 유착한다는 이미지를 더 많이 전달한다.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도 비슷한 합성어다.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을 합성한 조어로 이것 역시 부정적 의미가 많다. 언론활동을 배경으로 정계와 관계로 진출을 시도하는 언론인을 빗댄 말이다. 언론의 정치중립과 공정보도를 부르짖던 그들이 이런 행동으로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릴까봐 우려해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물론 학자나 언론인이 자신의 철학을 정치를 통해 펼칠 기회를 가지는 것은 나쁘지 않다. 자유 민주주의 세상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야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그것이 소신이나 철학이 아닌 개인의 출세와 영화를 위한 방법으로 사용된다면 비난받아도 마땅하다.
요즘 관료들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자주 나온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갑자기 국가정책이 180도 달라지는데 대한 우려다. 정책의 결과가 과거보다 나아지고 발전한다면 걱정일 리가 없다. 그러나 뻔히 나빠질 것을 알면서도 정치권 주장대로 끌려간다면 무소신 관료로서 비난받아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의 폴리크라트(정치관료)는 폴리페스와 폴리널리스트처럼 부정적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가정책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영혼 없는 공무원`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우정구(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