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는 행성이 천체에서 역행하는 모습에 의문을 가졌고, 이 의문은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라는 새로운 발견을 이끌어냈다. 지동설이 공식 인정받아 보편의 상식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44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위대한 탐험가`로 불리는 제임스 쿡(1728~1779)은 해도(海圖)가 없던 시절 뉴질랜드와 호주를 탐험했다. 북극에 이르러 여왕에게 “이 바다를 통해서는 영국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온통 얼음 뿐입니다”라고 보낸 편지는 유명하다. 그는 태평양 수많은 섬의 위치를 기록했고 이름을 지었다. 신념과 용기로 해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최근 시인이자 고전문학가인 이규배씨의 주장이 학계에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무도하가`의 새로운 해석 때문이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임은 결국 물을 건너네/물에 빠져 죽으니/임을 어이 할꼬(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將奈公何)”라 전하는 이 시가의 `백수광부`는 무당, 또는 가난한 사내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이씨는 이 해석을 부정하며 “백수광부는 제후나 왕족 등의 고위직이고, 뱃사공으로 해석된 곽리자고는 거문고의 명인”이라 주장한다. `어문연구` 2017년 여름호를 통해서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공(公)이란 임금이나 제후 등을 지시하는 단어”였다는 역사적 사실과 `공무도하가`를 전하는 중국 자료를 제시했다.
그의 주장이 얼마만한 설득력을 가진 것이냐를 떠나 이런 학술적 논쟁은 필요성이 분명하다. 코페르니쿠스와 제임스 쿡은 모두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던 거짓을 바로잡는 것과 아무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뛰어넘는 일에 생애를 걸었다. 그것이 `지동설`과 `태평양 해도`를 만들었다.
기존의 사고방식과 견해를 전복시키는 걸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한다. 이규배씨가 논문을 통해 보여준 용기있는 문제 제기 역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아닐까.
/홍성식(문화특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