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를 왕으로 받드는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귀가 따갑도록 배웠다. 그러나 실제로 시장에서 소비자가 왕이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요즘 우리나라 시장을 보면 소비자를 왕으로 부르기에는 너무나 터무니없다. 왕이 아니라 차라리 봉이라 부르는 게 맞다.
살충제 계란으로 시작된 파동은 끝 간 데를 모른다. 정부 당국이 보증한다는 친환경 계란에서조차 살충제가 검출되고, 심지어 살충제 성분이 함유된 닭까지 확인되면서 도대체 누굴 믿고 음식을 먹어야 할지 소비자는 불안하다. 이번에는 유럽발 간염 소시지가 문제가 됐다. 한국에 유통되는 독일과 네덜란드 산 돼지고기로 만든 베이컨의 판매가 중단됐다. 이뿐이 아니다. 이보다 앞서는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은 소비자가 출혈성 장염 증세로 입원하는 일이 벌어졌다. 푸드 포비아(food phobia)란 말이 돌기 시작했다. 음식 공포증이다.
소비자들 밥상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말이 실감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한 조류 인플루엔자(AI)는 온 나라를 요동치게 했다. 2천만 마리의 닭과 오리 등이 살처분 당했다. 피해도 컸지만 이 때문에 계란 값이 한판에 1만원까지 치솟았다.
정부 당국만 쳐다보던 소비자는 온통 바가지만 덮어썼다. 올여름 더위와 가뭄으로 채소류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배추 한포기 7천원이란다. “무서워서 못 사먹겠다”는 소비자들이 이젠 “비싸서 못 사먹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래저래 소비자가 왕이 아님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얼마 전 여성 생리대에서 발암 물질이 의심된다는 소비자단체의 항의가 일어나면서 생리대 제조회사가 환불접수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가습기 살균제가 인명을 빼앗아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생리대 부작용 논란이 다시 벌어졌다. 과연 소비자가 의지해야 할 데는 있는 것일까. 무대책한 당국만 바라보는 소비자는 불안할 뿐이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