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조력을 기대하고 뇌물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내려진 이번 판결을 두고 환호와 비난이 엇갈리는 형국이다. “지은 죄만큼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반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돈을 강탈당한 것이니 정상을 참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법은 만인 앞에 공평해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이 짤막하고도 당연한 문장이 권력과 금력 앞에서는 힘을 잃는 경우가 흔했다.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통치자는 가장 먼저 입법기관의 무력화를 획책한다. 중동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과 하피즈 알 아사드의 경우가 그랬다. 그들은 법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법 위에 군림했다. 한국의 경우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외견상으론 분리돼 성장했고, 많은 돈을 가진 자가 정치권력과 결탁해 초법적 지위에 오르려 했다. 이게 현 정부가 청산의 대상으로 지목하는 적폐 중 하나인 `정경유착`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재용 부회장 판결에 대한 법리적 논란은 유보하자. 다만 한 가지 긍정적 측면은 인정하지 않기 힘들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법이 더 이상 가진 자의 방패가 될 수 없다는 걸 선언한 듯하다. 이는 과거와의 절연이라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1988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탈옥사건이 발생한다. 도주 끝에 자살을 택한 탈옥범 한 명이 세상을 향해 소리쳤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범죄자조차도 부자에겐 방패가 되고 빈자에겐 창끝이 되곤 했던 당시의 한국 법을 조롱한 것이다. 그런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홍성식(문화특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