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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세월호의 진실

등록일 2017-08-18 21:28 게재일 2017-08-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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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연단에 선 문재인 대통령은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10초 가량 말문을 떼지 못하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다소 떨리는 목소리였다. 단상 아래에서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실종자 가족, 생존자 까지 총 207명의 세월호 가족들이 감회어린 눈빛으로 대통령을 쳐다보고 있었다.

“세월호를 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미수습자 수습이 끝나면 세월호 가족들을 청와대로 한번 모셔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수색작업을 하는 중에 이렇게 모시게 됐습니다.”

문 대통령의 표정은 침통했고, 눈시울과 코끝이 붉게 물들었다. 연단 좌우 대형 모니터에는 노란 리본 모양 문구와 함께`304명 희생된 분들을 잊지 않는 것 국민을 책임지는 국가의 사명입니다`라는 글귀가 떠있었다. 문 대통령은 먼저 미수습자 가족에 대해 “선체 수색이 많이 진행됐는데도 아직도 다섯 분이 소식이 없어서 정부도 애가 탄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들이 모두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당시 정부에 대해선 가차없는 비판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많은 국민이 3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세월호를 내려놓지 못하고 가슴 아파하는 이유는 미수습자 문제 외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도대체 왜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일어났던 것인지, 정부는 사고 후 대응이 왜 그렇게 무능하고 무책임했던 것인지, 그 많은 아이가 죽어가는 동안 청와대는 뭘 하고 있었던 것인지, 너무나 당연한 진상 규명을 왜 그렇게 회피하고 외면했던 것인지, 인양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인지 국민은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고 분개했다. 많은 국민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대통령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세월호의 진실`이었다. 문 대통령은 “세월호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가족의 한을 풀어주고 아픔을 씻어주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다시는 그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이 추후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약속이었다.

문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갔다. 문 대통령은 “분명한 것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정부는 참사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선체 침몰을 눈앞에서 뻔히 지켜보면서도 선체 안 승객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을 정도로 대응에서도 무능하고 무책임했다”고 당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타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흥분된 마음을 추스른 듯 차분한 목소리로 “늦었지만 정부를 대표해 머리숙여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세월호 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세월호 사고 발생 이후 대통령이 공식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이 청와대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을 만난 것도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정확히 3년4개월 만의 일이었다. 청와대에 초청된 세월호 가족들은 “이렇게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인데 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느냐”며 울먹였다.

행사에 앞서 취재진과 만난 `유민 아빠` 김영오 씨는 “너무 억울했다. 분통이 터졌고. 지금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이렇게 쉽게 들어올 수 있었는데. 아무것도 아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씨는 “3년이나 노숙하고 단식하고 그렇게 만나달라고….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시위하고, 정말 빌었다. 지금은 응어리가 모두 터지는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그렇게 우리 말 좀 들어달라고, 아픈 사람 목소리 좀 들어달라고…. 이렇게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에겐 큰 위로가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광화문 거리에서 단식을 함께 했던 유민아빠 김영오씨와 재회했고, 실종자 가족 대표인 남경원씨와 포옹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을 약속한 대통령의 말에 큰 위로를 받은 가족들은 다소 편안해진 표정으로 돌아갔다. 대통령에게도 미지수로 남아있는 `세월호의 진실`이 조만간 낱낱이 밝혀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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