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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등록일 2017-07-06 02:01 게재일 2017-07-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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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규열<br /><br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기다리던 비가 내린다. 그동안 목이 타도록 바라던 빗줄기가 시원하다. 청청한 초록이 싱싱한 기운을 흠뻑 들이킨다. 신기하게도 장마는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나름 골고루 물줄기를 대면서 오랜 가뭄에 쌓인 간절함을 거센 빗줄기로 씻어 내린다. 또 하나 신통한 것은 장마가 지나간 자리에는 백발백중 폭염이 찾아오는 것이다. 물씬 적신 대지를 익히기라도 하듯이 뜨거운 햇발이 쏟아져 내린다. 정성으로 심은 곡식들이 장마 뒤 폭염 속에 푹푹 익어가는 것이다. 장마를 통해 논밭의 농작물이든 들판의 잡초든 쑥쑥 자라는 것을 보고 옛 사람들은 `장마에는 돌도 큰다`고 하였다. 아무렴 돌이 자라겠는가 싶지만 이렇게, 자연은 소리없이 인간을 돕는다.

농작물이 장마를 거치며 바라던 대로 풍성한 결실을 내려면, 장마 전에 여러 가닥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장마를 홍수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려면 치수에도 미리 손을 써야 할 것이다. 이처럼 기다리던 장마가 온다고 해서 저절로 모든 것이 좋아지는 것이 아닌 것은, 인간에게 장마를 대비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려는 것일까. 자연이 도울 테니까, 사람은 준비하라는 소리가 거의 들리는 것이다.

윤흥길의 소설 `장마`는 마침 이즈음에 맞았던 한국전쟁의 모습을 여러 갈래로 그리고 있다. 준비없이 맞았던 민족의 비극이어서 그랬을까, 작가는 글 속에서 어둡고 지겨운 어려움으로 다가온 전쟁을 마침 함께 찾아왔을 긴긴 장마 빗줄기에 빗대고 있는 것이다. 삶의 어려움이 지나가면서 장마가 그친다는 복선에는 작가가 장마를 바라보는 시선도 보이는 것이다. 기다림의 소망이 기대만큼 열매를 거두려면, 장마가 오기 전에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그려지는 것이다. 혹 미리 준비하지 못하였다면 장마가 지나는 동안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동안 이 나라가 겪어온 경험과 좌절을 통하여 이제는 한번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보겠다는 간절함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 아닐까. 수개월을 지나며 밝혔던 촛불을 그래서 누구나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가뭄을 지나며 지녔던 목마름처럼 촛불을 지나며 가졌던 간절함이 아니었을까. 장마로 다가온 빗줄기를 떠내려만 가도록 버려두지 않아야 하듯이, 희망으로 다가온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기회도 절대로 헛되이 흘려 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 장마가 모든 곳에 골고루 찾아오듯이, 희망도 국민 모두에게 차별없이 다가가야 할 것이다. 그만 했으면, 이제는 좌우로 갈라 세우는 일이 그리 의미없다는 것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념이란 결국, 더 나은 내일을 만나기 위한 지향성과 방법론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그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더욱 나라다운 나라를 당기기 위한 다른 모습의 간절함이 아니었을까. 좌우로 갈라서서 생각없이 손가락질만 퍼부을 일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마음의 가닥들을 모아가면 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더 이상 반목과 비난으로만 아까운 날들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싶다. 다가온 장마가 뒤이을 폭염 속에 온갖 과실을 맺는 것처럼, 찾아낸 희망이 모든 이들의 열정과 함께 진정한 나라다움을 일구어 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다림이 장마로 이어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간절함이 희망으로 이어진 것이 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장마가 결실을 이루듯이 희망이 나라다움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장마 후 결실을 위해 무더위가 찾아오듯이, 희망과 함께 나라다움을 건져 올리기 위해서는 열정으로 가득한 담론과 비평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목표가 `나라다움`이었음을 잊지만 않는다면, 차근차근 나아가는 일이야 거뜬히 이룰 것이다.

장마를 홍수로 보내지 말 일이며, 희망을 다툼으로 까먹지 말 일이다. 기다리던 비가 내린다. 기다렸던 희망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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