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작은 항구도시인 칼레시를 포위해 1년여 동안 공격을 했으나 성안에 있던 시민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함락시키지 못했다. 포위된 채 계속된 전쟁으로 식량마저 다 떨어진 칼레시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사절단은 영국 왕에게 칼레시와 시민들에게 관용을 요청했고, 1년여 동안 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에드워드 3세는 칼레시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대신 지역 대표 6명의 목숨을 요구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도시는 혼란에 빠졌다. 혼란 속에 칼레시의 최고 부자와 시장, 법률가 등 상류층 인사 6명이 시민과 도시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나섰다. 사형 집행일에 나타난 시민 대표들은 단두대에 올라서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왕비가 이들의 사형 집행이 임신한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왕에게 사면을 요청했다. 이들의 희생정신을 높이 산 왕은 왕비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단두대에 올라선 6명의 목숨은 물론 시민들도 살게 됐다. 이 사건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사회적 책임을 지켜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오늘날에도 회자되고 있다.
수백년이 흐른 후 프랑스 정부는 칼레 시민들의 목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진 6명의 자발적 희생정신과 행동이 미래의 프랑스 정신이라며 조각가 어귀스트 로뎅을 선정해 동상을 건립하게 됐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떤가? 지난 2014년 재벌가인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에 이어 라면상무 사건, 빵회장 사건 등으로 전 국민의 분노를 샀던 갑질사건이 있은 후 국내 언론마다 사회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강조했고 이후 한동안 잠잠하는듯 했다.
그러나 최근 치킨 회장, 피자 회장, 대기업의 하도급 대금깎기 등 기업의 갑질을 비롯해 경비원 폭행, 연구비 횡령 교수 등 지도층 갑질이 신문과 방송에 끊이지 않고 보도되고 있다. 돈과 명예, 학력와 지위를 가지는 소위 사회 지도층을 비롯해 생활 속에서 갑질이 끊이지 않는 것은 사회 전반에 갑질 문화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새 정부 `경제민주화` 기조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 등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와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대기업의 하청업체·중소기업 갈취행위를 겨냥한 사정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갑질에 대해 손을 보겠다는 것이다.
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 회장은 친인척 회사를 중간납품업체로 끼워 넣어 가격을 부풀리고 가맹점을 탈퇴한 업주에 보복행위를 해 업주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국민들에게 공분을 샀고 현대자동차그룹의 부품계열사 현대위아는 최저가 경쟁입찰을 응찰한 수급사업자와 추가로 금액인하 협상을 통해 이익을 챙겼다.
기업만 갑질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식당과 콜센터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아파트 경비원 등 자신보다 사회적인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여기면 함부로 무시하는 것은 상류층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만연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갑질 없는 사회의 핵심가치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맹자는 “거지에게 적선을 하더라도 개나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처럼 준다면 받기를 꺼릴 것이다”라며 거지에게 적선을 하더라도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고 했다. 흔히 하는 말로 상대방을 대할 때는 배려심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실제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실천하기는 어렵다. 말로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고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성인과 깨어 있는 이들이 먼저 배려의 DNA를 실천하고 널리 퍼뜨려야 사회가 변한다. 오늘 당장 따뜻한 마음으로 상대방이나 이해관계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해 보기를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