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어둡다. 대학교수가 가르치던 학생에게 테러를 당하였으며, 고층건물 창을 닦던 인부가 주민에 의해 생명줄이 끊겨 사망하였다. 세상이 왜 이럴까. 윤리와 도덕, 그리고 종교적 가치로 오늘 세상을 견주어 보면 이전 그 어느 시대보다 조금도 나아졌다고 부르기가 어렵게 되었다. 물론, 그 학생과 교수 간에 시빗거리가 있었을 것이며, 그 건물 외벽을 사이에 두고도 다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테러나 살인에 이르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쳤다 할 것이다.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경제적으로 이 민족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화려한 시절을 살고 있다는데, 우리 사회는 이처럼 어두운 뉴스에 날마다 시달리는 것일까? 잘 살기 위하여 달려온 끝에 이렇게 무너지는 결말을 보는 일은 세상 누구에게도 자랑이 아닌 것이다. 이를 해결할 열쇠는 무엇일까.
교육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다음세대를 기르는 우리의 태도가 혹 문제는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 나라 교육의 틀을 처음 만들던 시절, 교육의 목표는 아마도 `살아남기`, `버텨내기` 또는 `이기고 올라서기`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에 대한 평가도 모든 것에 등수를 매기고 그에 따라 우열이 판가름 났을 터이다. 그러므로, 교육은 치열한 경쟁의 장이 되었으며 평가는 사실상 떨어뜨리기 위한 제도가 되고 말았던 것 아닌가. 그런데, 오늘 교육에 성공했다는 여러 다른 나라들의 사례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교육의 목표를 `경쟁`이 아니라 `협력`에 두고 있다고 한다. 어차피 함께 살아야 할 이웃들을 밟고 올라간들 그 끝에 내게 무슨 영광이 있을 것인가. 풍성한 결실을 만들기 위해 함께 애쓰며, 그런 열매도 함께 나누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누르고 올라가기보다 돌아보며 배려하기를 가르쳐야 한다.
바꾸어야 할 세상은 과목별로 문제를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닥들은 모두 통합적인 어려움들인 것이다. 경제적 문제인가 하면 사회적 가닥이 얽혀 있으며 문화적인 장애물도 함께 품고 있는 것이다. 문과나 이과의 구분도 사실은 덧없는 울타리일 뿐이다. 교육에 있어 기본 소양이 어느 정도 든든하게 길러진 것을 확인한 다음, 우리는 교과운영의 틀을 조정하는 데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터이다.
암기력으로 승부하는 오래된 교육을 벗어야 할 것이며, 이해력으로 충분하다 생각하는 오류에서도 얼른 탈피하여야 한다. 암기하고 이해하는 일은 기계가 거뜬히 해내고 마는 세상이 빠르게 다가온 것이다. 이제는 뭉게뭉게 상상력으로 승부하여야 하며 새로운 세상을 그려내는 창의력으로 맞서야 한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르칠 수 있는가는 토론거리이겠으나, 교육과 훈련의 현장에서 상상과 창의를 얼마든지 체험하고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암기한 정답을 토해내어 좋은 성적을 받는 교육은 이제 버려야 한다. 무엇을 조금 더 아는 일이 자랑이 되는 세상도 이미 아닌 것이다. 주변에 널린 문제들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가는 `문제해결형` 교육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멀쩡해 보이는 현실에서도 문제를 찾아낼 줄 아는 `비판적 사고`가 그래서 필요할 것이다. 세상의 문제들을 다른 사람의 몫으로만 생각하기보다,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찾아내어 도전하며 해결해 내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일에 가치를 두는 사람을 길러야 하며, 세상에 가득한 문제들을 찾아내어 해결해 낼 줄 아는 다음세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 배려하고 협력하는 기본 인성을 일구어야 하며 통합비판적 사고에 능숙한 문제해결형 인재를 길러야 한다.
그동안 교육이 우리를 여기까지 잘 이끌어 준 일이 다행스럽지만, 이제는 새로운 교육으로 보다 나은 내일을 맞아야 한다. 다음 세대가 살아야 이 나라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