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나아진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소통이 아직도 문제라는 인식이 있다. 나라의 리더십에서 가정의 부모들까지 소통을 잘 하지 못해서 국민들로부터 가족들로부터 믿음을 잃어버리기 일쑤인 것이다. 왜 그러는 것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소통이란 정말 어찌 해야 하는가.
疏通.(소통) 글자가 어렵다. 어려운 것이니 쉽게 풀리지 않는다. 영어로는 Communication, 그 본래 말뜻에 `나누는 일`, `함께 하는 일` 그리고 `공동체 만들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퍽 쉬워진 느낌이다.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서양 속담에 `입으로 망하는 사람보다 귀 때문에 무너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내 생각을 펼치기에 분주하여 남의 생각을 듣지 않는 일을 빗대어 하는 소리일 것이다. 내 생각이 틀린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마음에 담은 생각을 정연하게 잘 표현할 일이지만, 또 다른 사람이 담고 있을 진정성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말하기만 하고 듣지 않겠다는 심보는 무엇인가 함께 하기 싫다는 고집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경영의 대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상대방이 하지 않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하였다. 소리높여 외치는 소리도 듣지 않는데, 하지 않는 소리는 도대체 어찌 들을 것인가.
소통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하지 않는 소리까지 챙겨 들으려면, 소통에는 공감이 필수라는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리더가 공동체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나의 생각에 진심이 담겼듯이, 상대도 간절함으로 오고 있다는 걸 어찌 모른다는 말인가. 어째서 당신 혼자만 이야기하고 남들은 듣기만 하라는 말인가. 마음과 마음이 오고 갈 때에야 공동체도 서지 않을까.
편가르지 말기. 이 소리를 해서 듣는 이들이 편갈라 질 것인지 아니면 편안해 질 것인지는 말하는 사람이 안다. 털끝만큼이라도 편갈릴 생각을 나눌 터이면 극도로 조심해야 할 것이다. 생각은 나만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늘 담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던지는 소리가 공동체에 덕이 되는지 독이 되는지 살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실수가 어찌 없을 것인가. 뱉어낸 말이 의도와 다르게 공동체에 독이 되었을 때, 우리는 간혹 소통에 있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상대가 입은 상처가 보이면 다가가 위로할 일이며, 나의 표현에 실수가 있었다면 얼른 인정하고 돌아설 일이 아닐까. 당황스럽고 불편하다고 소통의 문을 닫아 버리면 거듭 실수의 늪으로 빠져들곤 하는 것이다. 소통의 진정한 승리는 저질러진 실수를 인정할 때에 거두는 것이다.
조선의 왕 세종은 국사를 다루면서도 `우리가 이렇게 결정하고 결론을 내렸을 때 혹시 억울한 사람이 없겠는지 다시 한번 찾아보고 확인하라`고 했다지 않는가. `공동체`를 이루는 일은 나의 생각을 관철함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우리`의 생각을 정하는 일은 나만 옳아서 정리되지 않는다. 거듭 살피고 확인하여 덕이 되는 방향을 찾아보아야 한다. 일사천리로 나아가는 일만이 반드시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건 역사와 함께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함께 살아가는 일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으며, 민주주의는 그래서 불편한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생각을 나누게 하여 아우르며 어울리는 공동체로 나아가야 할 터이다.
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생각 한 자락을 깊이 새겨볼 일이다. `무엇인가 이야기했을 때 우리의 가장 위험한 착각은, 소통을 이미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 이제 겨우 시작인데 말이다.` 소통으로 공동체를 살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