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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메달 대선` 읽기

등록일 2017-05-08 02:01 게재일 2017-05-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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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더러 거액이 오가는 도박에 사용돼 물의를 빚기는 하지만, 화투(花鬪)는 우리 민중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심심풀이 놀이도구다. 화투는 대체로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에 전한 `카르타(carta)놀이 딱지`가 원형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인들이 그것을 본떠 `하나후다(花札)`라는 것을 만들었고, 조선조 말엽 혹은 일제강점 이후에 우리나라로 들어와 현재에 이르렀다 한다.

고스톱(Go-Stop) 또는 고도리라고 불리는 화투놀이가 있다. 보통 3점 이상 먼저 내는 사람이 이기게 된다. `고(go)`를 선언한 참여자가 점수를 더 못 내고 3점을 낸 다른 참여자가 끝내 없을 때를 `나가리`라고 부른다. 화투를 잘 모르는 초짜가 끼거나 `못 먹어도 고(go)`를 일삼는 참가자가 있으면 판은 복잡하게 엉킨다. 정상적인 사람일수록 판 읽기는 헷갈리고 엉뚱한 사람이 승자가 되기도 한다.

후보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쳐온 `5·9장미대선`이 목전에 다다랐다. `반문정서(문재인 반대 정서)`와 안철수의 `가능성`이란 두 축을 중심으로 한때 양강구도가 형성됐던 대선전은 여론조사가 금지된 `깜깜이 선거` 직전에 1강 2중의 혼전으로 흘렀다.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영·호남 지역대결이 묽어지고 다당제(多黨制)의 정착이 암시되고 있다는 점 등이 가장 큰 특징으로 나타난다.

일단 영남이나 호남에서 한 후보에게 몰표를 행사하는 `묻지 마 투표` 양상이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가 관심사다. 유권자들이 다소나마 `정책`을 변별하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우리 정치문화가 한 발짝 선진화할 수 있다는 기대도 갖게 한다. 그러나 `세탁기에 집어넣고 돌린다`느니,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느니 하는 케케묵은 분열획책 공약이 나오는 등 우려스러운 대목도 없지 않다.

정해진 경기규칙에 맞춰서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며 달린다는 점에서 선거는 육상경기와 꽤 닮았다. 하지만 `은메달이 없다`는 점에서 선거는 육상경기보다 훨씬 더 잔인하다. 2등은 곧 꼴등이나 마찬가지다. 1등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창졸간에 망각의 늪에 폐기하는 게 선거다.

지난 2015년 7월이던가,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경상도 국회의원은 동메달”이라는 발언을 내놓아 시끌했던 일이 있었다. 김 대표의 `동메달` 발언에 대해 노정객 박찬종 변호사는 한 방송에서 “(경상도 국회의원은) 동메달도 아니고 `돌메달`”이라며 한술 더 떴다. 본선보다 더 치열한 예선전을 간과한 발언이라는 분통을 샀지만, `지역 몰표` 행태를 세차게 꼬집은 말임에는 틀림없었다.

프랑스식 결선투표가 없는 환경에서 다자대결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어느 주자도 과반을 넘지 못하는 `돌메달 선거`가 될 공산이 크다. 당선자의 영예도, 낙선자의 변명도 모두 보석 값을 매겨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든 참여자들이 `못 먹어도 고(go)`를 외치는 고스톱 판처럼 된 대선전은 그러나 `흔들기`도 없고, `나가리`도 없다.

이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다당제 정치치제`의 고착화 부분이다. 어차피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협치` 내지는 `연정(聯政)`아니고는 국정을 움직일 수 없게 돼 있다. 집권당이 오만한 태도로 민심을 작위적으로 끌어가려고 하거나, 광장정치 포퓰리즘 장난에 매몰된다면 국가적 혼란은 극에 달할 수도 있다. 결국 이번 선거는 `혼란의 매듭`이기보다는 `새로운 신호탄`으로서의 의미가 더 깊다.

이제 유권자들의 선택만 남았다. 누구를 당선자로 낼 것인가의 수준을 넘어서는 전략적 안목이 요긴해졌다. 선거판을 명료하게 이끌어 선택지를 편하게 만들어주지 못한 정치권의 요령부득이 원망스럽기는 하지만 어쩔 것인가. 이런 현상 자체가 시대변화의 산물인 것을. 선거이후에 대한 깊디깊은 혜안이 필요해진 `돌메달 대선` 앞에서, 유권자들의 심모원려(深謀遠慮)만이 절실한 단 하루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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